"남한에서 여섯 번째 맞는 추석입니다. 부모님 산소에 술 한잔 올리고 싶은 마음 너무너무 간절한데… 추석 때만이라도 차례주 한 병을 고향에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북한을 탈출해 2004년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 김태영씨(34)는 추석 명절만 오면 북녘땅에 잠들어 계신 아버지 어머니와 북한에 홀로 남은 둘째 오빠 생각에 눈시울을 붉힌다. "남한에서 차례를 지내긴 합니다만 자식으로서 정성을 다 쏟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죄스런 마음뿐입니다. 오빠는 잘 있는지…."

지난 18일 서울 M아파트 상가 내 한 택배점에서 만난 김씨는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아려온다고 말했다. 이 택배점은 서울시가 새터민들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해준 것으로 점장인 김씨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활터전이다.

김씨는 혈혈단신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온 다른 새터민보다 행복한 편이라고 말했다. 남한에는 현재 큰오빠 가족(4명),셋째 오빠,언니가 살고 있다. "저는 2004년 셋째 오빠와 함께 중국 국경을 넘었고 2006년 언니가 탈북해 왔어요. 큰오빠 가족은 지난 4월 북한을 탈출해 들어왔고요. 다들 남한 생활에 적응하느라 자주 보지 못하지만 추석에는 오순도순 모여 고향 얘기를 나눌 거예요. "

김씨가 탈북을 처음으로 결심한 것은 21세 때인 1997년."건강하던 어머니가 그때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병원 한번 못 가보고,약 한번 못 써보고 돌아가셨지요. 먹을 것도 없었어요. 그때 모든 희망을 잃고 처음으로 탈북하기로 작정했습니다. "

김씨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탈북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중국을 통해 남한으로 오는 여정은 그후로도 7년이 더 걸렸다. 2004년 셋째 오빠와 함께 중국 지린성으로 들어갔고,거기서 숨어 있다 남한에 들어왔다. "국경을 넘으면서 말라 비틀어진 생옥수수와 생감자를 씹어 먹었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합니다. 못 먹어 굶어 죽은 사람을 북한에서 여러 차례 봤어요. "

김씨는 "남한의 추석은 너무 풍성하다"고 말했다. 추석 선물 택배가 많은 요즘 들어오는 물량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상점마다 과일과 선물세트가 넘쳐나죠." 남한에 온 지 6년째인데도 풍성한 선물세트를 보면 제대로 못 먹고 살고 있을 둘째 오빠와 동네 이웃들이 생각난다고 김씨는 말했다. "택배로 술이라도 한 병 보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군요. "

김씨는 택배 물량을 처리하느라 요즘 눈코 뜰 새가 없다. 서울시가 남한 정착을 위해 지원해주고 있지만 택배점 운영은 오롯이 김씨의 수완에 달려 있다.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넜습니다. 열심히 살아야지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하늘나라에서 우릴 지켜보고 계실 거예요. " 추석에 보름달을 보며 빌 소원이 있느냐는 물음에 김씨는 "북한에 남아 있는 둘째 오빠와 고향 친구들이 잘 먹고 살게 해달라고 빌 거예요. 언젠가 좋은 남자 만나 시집도 가게 해달라고 빌 겁니다. "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