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LG전자 최고경영자(CEO)직에서 전격사퇴한 남용 부회장은 LG그룹 내에서 대표적인 전략가로 평가받으면서도 굴곡이 많았던 경영인으로 꼽힌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76년 LG전자에 입사한 남 부회장은 이후 10여 년간 수출기획과 로스앤젤레스(LA) 지사 근무 등을 통해 핵심 해외 업무를 담당했다.

LG 기획조정실 비전추진본부 상무와 경영혁신추진본부장을 맡아 '사업의 핵심과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을 갖춘 전략가'로서 계열사의 사업구조 고도화 작업도 강력히 추진했다.

이후에도 LG그룹 회장실 이사와 LG경영혁신추진본부 전무, 부사장 등을 거치며 전략기획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LG그룹 내 대표적 전략가로 인정받았다.

영어실력이 뛰어나 구자경 당시 회장 비서실장 재직 시절에는 통역 담당으로 성가를 높이기도 했다.

LG전자 멀티미디어사업본부장 시절에는 수익성이 낮았던 사업본부를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고, LG텔레콤 대표이사 시절에는 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전략과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가입자 650만 명을 돌파하며 포화상태의 국내 이동통신시장에서 업계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SK텔레콤 등과 경쟁했던 IMT-2000 사업과 관련해 2006년 7월 동기식 IMT-2000 사업허가 취소가 확정되면서 LG텔레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다가 2007년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일선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LG전자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에는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LG전자의 글로벌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전체 7명인 C-레벨(최고책임자)급 부사장 중 5명을 외국인으로 앉히는 등 파격적인 인사실험으로 관심을 모았다.

또 프라다폰과 쿠키폰 등 디자인을 강조한 히트작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2008년부터 시작된 애플발(發) 스마트폰 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올 2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0%나 하락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등 큰 위기에 직면했다.

증권가에서는 LG전자의 3분기 실적이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되는 등 스마트폰 혁명에 제때 대처하지 못한 대가는 컸다.

올 초부터 스마트폰 대처 실패에 따른 LG전자의 실적부진설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자 남 부회장의 책임론이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이런 와중에 경질 가능성이 여러 차례 대두했으나 LG의 기업문화상 연말인사까지는 끌고 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결국 LG전자는 17일 열린 이사회에서 자진사퇴라는 형식을 빌려 남용 부회장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를 놓고 업계 일각에서는 LG가 스마트폰 혁명이 몰고 온 위기를 오너경영체제 강화를 통해 뚫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