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인가. 밀 옥수수 등 국제 곡물가격 폭등에 이어 육류가격까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미 국제 생우(生牛 · live cattle) 선물가가 20년 만에 최고치로 뛴 데다 돼지고기 양고기 등 주요 육류 가격도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애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곡물 수확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기후가 심화되고,중국의 전략적 비축과 러시아의 금수조치 등이 장기화할 경우 가격 통제가 불가능한 '패닉형 애그플레이션'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곡물에서 육류로 '도미노' 폭등

3일 국제 옥수수 가격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부셸당 4.5달러까지 상승했다. 올초 4.3달러 안팎이던 옥수수값은 지난 6월 말 3.33달러까지 곤두박질친 이후 상승세를 이어왔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까지 반영되면서 설탕과 커피 등 기호식품가격도 고공비행을 멈추지 않는다. 뉴욕선물거래소(ICE)에서 설탕은 지난 5월 초 파운드당 13.67센트를 기록한 이후 2일 장중 20센트를 넘겼다. 지난 1분기 파운드당 1.3달러 안팎이던 커피도 현재 1.9달러까지 치고 올라왔다.

육류가격도 날개를 달아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 생우 선물은 파운드당 1달러로 2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베이컨용으로 쓰이는 돼지고기 뱃살은 파운드당 약 1.5달러로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 광우병 파동 이후 쇠고기 대체재로 소비가 늘어난 양고기 가격은 상승세가 이보다 더 가파르다. 지난달 호주산 양고기 가격은 ㎏당 5.5호주달러로 치솟았다.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육류,공급이 달린다

러시아 가뭄 등 이상기후로 촉발된 곡물가 상승이 육류가 상승으로 확산된 주요 원인은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이른바 '이머징마켓'소비자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육류 소비가 크게 늘어난 탓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반면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페드로 아리아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축산물 이코노미스트는 "단백질 소비 비중이 높은 중산층이 크게 늘어난 중국을 중심으로 쇠고기,양고기 소비가 늘고 있지만 주요 산지인 미국과 호주는 오히려 사육규모를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사료가격 상승으로 축산업자들이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미국에서 사육되고 있는 소는 1995년 1억1300만마리 수준에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지난 7월 기준 1억80만마리로 크게 줄었다.

국제 금융시장의 투기자금 역시 가격 상승을 촉발한 또 다른 축으로 지목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육류 선물 계약은 연초에 비해 3배가량 늘었다. 곡물에는 이미 투기자본 유입이 본격화됐다. 옥수수 선물옵션의 경우 지난달 17일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37만1000계약이 체결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제임스 매킨토시 상품시장 이코노미스트는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장바구니 물가 걱정도 늘어나겠지만,농산물 펀드에 투자한 소비자들이라면 값비싼 베이컨을 달게 삼킬 수 있을 만큼 펀드수익률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그플레이션 악몽 재연되나

정교한 가격예측 시스템을 갖춘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과 몬산토 카길 등 다국적 농산물회사들이 그동안 농산물 가격을 쥐락펴락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의 수급정책이 더 큰 변수로 떠올랐다. 이상기후 피해에 따른 학습효과인 셈이다. 이 중 주목할 곳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올 들어 7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56배나 많은 총 28만2000t의 옥수수를 수입했다. 특히 7월에는 6월의 세 배에 달하는 19만4000t을 들여왔다. 평소의 수입량을 감안할 때 예사롭지 않은 행보다. 제로엔 레펠라 네덜란드 라보뱅크 애널리스트는 "일단은 가축사료로 쓰이는 수요가 급증한 것이 표면적 이유지만 장기적 비축에 염두를 둔 듯한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세계 농산물 시장의 이목이 러시아는 물론 주요 밀 생산국가인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 주변국가로 쏠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중국이 사들이고,이들 국가가 수출 중단에 동참할 경우 파장이 커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그러나 애그플레이션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여전히 낮게 보고 있다. 유가 상승 등 여러 변수가 더 충족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본격적인 추수철로 접어든 올가을과 내년 상반기까지가 최대 고비겠지만,이후엔 안정세를 찾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육류가격 상승을 점친 축산업자들이 최근 사육규모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반대로 가격 폭락도 배제할 수 없다. 구제역과 광우병 발생 여부도 향후 육류가격의 향배를 결정지을 주요 변수다. 웨슬리 멘돈카 바티스타 JBS 대표는 "2011년을 정점으로 쇠고기 가격은 조정을 거쳐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 애그플레이션

agflation.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inflation을 합성한 말이다. 곡물가격 상승이 일반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 2007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로 생산량은 감소하는 반면 사료 및 바이오연료용 수요는 증가하는 등 수급 불균형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