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는 2004년 'IT839'라는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통신 · 방송 8대 서비스와 3대 인프라,9대 신성장동력에 주력하겠다는 전략이었다. IT839 중에서 맨 먼저 꼽았던 것은 와이브로다. 정통부는 와이브로에 대해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에 버금가는 대단한 기술 개발"이라고 자랑했고,증권시장에서는 '와이브로주'가 뜨기도 했다. 그 와이브로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와이브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삼성전자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통신 기술로,2006년 6월 KT가 세계 최초로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입자는 4년이 지난 현재 KT 30만여명과 SK텔레콤 7만여명을 더해 40만명도 안 된다. 두 회사가 거의 1조원씩 쏟아붓고 벌어들인 돈은 고작 1000억원 남짓.2004년에 정부가 예상했던 2010년 가입자와 누적매출은 각각 885만명,8조1778억원이었다.

와이브로는 국제적으로 '모바일 와이맥스'라고 불린다. 주도 기업인 인텔과 삼성전자는 와이맥스를 4세대 이동통신 기술 표준으로 밀고 있다. 그러나 세계 주요 이동통신사들은 대부분 경쟁 기술인 LTE(롱텀에볼루션)를 채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SK텔레콤과 LG U+(유플러스)는 2012년 7월 LTE 상용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고,KT 역시 LTE를 주력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와이맥스 상용서비스를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사업자는 159개나 된다. 그러나 가입자를 모두 더해도 1000만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와이맥스(와이브로)는 죽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국내에서는 투자한 설비를 활용하는 쪽으로 가고 있고,해외에서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틈새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KT와 SK텔레콤의 와이브로에 대한 생각은 달라졌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 압력을 못 이겨 마지못해 투자했는데 지금은 자발적으로 투자한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데이터 트래픽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와이브로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KT는 현재 수도권 19개 도시에서 와이브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내달까지는 5대 광역시로,내년 3월까지는 84개 도시로 서비스 지역을 넓힌다. 지난 8월에는 와이브로 네트워크를 국제표준에 맞춰 업그레이드했다. 4세대 이동통신에서는 LTE와 와이브로를 모두 활용할 예정이다. 'LTE+와이브로' 형태다. 내년 말 와이브로 주파수 사용 기간이 끝나면 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SK텔레콤도 달라졌다. 4세대 기술로 LTE를 채택한다고 발표했지만 와이브로망이 과도한 트래픽을 분산시키는 용도로 유용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 국한된 와이브로 커버리지를 84개 도시로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5대 광역시는 이달 중 도시 대부분 지역으로 넓히고,지방 중소도시는 오는 11월까지 도심에서 와이브로가 터지게 할 예정이다.

와이브로가 전 세계에 확산돼 장비와 단말기에서 '대박'을 기대했던 삼성전자는 시장을 개척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삼성은 현재 1000만명 수준인 와이맥스 이용자가 올해 말엔 2000만명,내년 말에는 4500만명으로 늘고,4세대에서도 신규 사업자를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와이맥스가 LTE와 더불어 4세대 이동통신 기술 표준으로 채택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와이맥스 장비를 공급한 사업자는 한국의 두 사업자를 제외하고도 미국 클리어와이어,일본 UQ,러시아 요타 등 16개이며,40여개 사업자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클리어와이어는 전국망을 깔고 있고,UQ는 최근 기지국 1만개를 돌파했다. 삼성은 스프린트에 음성통화가 가능한 와이맥스폰 '에픽 4G'를 공급하고 있다. 이달 중에는 인도가 와이맥스 사업자를 선정할 가능성이 있다.

와이브로가 기대했던 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초기에 전망을 부풀렸다는 얘기가 있고,예측을 잘못했다는 얘기도 있고,이동통신사에 와이브로 사업권을 준 게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다. 유럽 통신사 · 장비사들이 LTE를 중심으로 뭉친 바람에 힘에서 밀렸다는 얘기도 있다. 와이브로는 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 같다.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