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운수업자 박모씨(54)는 2005년 매출 신고를 누락했다며 관할 세무서가 부가가치세 1억여원을 부과하자 이의신청을 했다. 같은해 7월29일 재조사 결정 통지가,10월24일 재조사 결과 통보가 왔다. 박씨는 4일 후 국세청에 심사청구를 제기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재조사 결정을 통보받은 날(7월29일)로부터 90일이 지나 부적법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납세자는 이의신청에 따른 재조사 결정 통지를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 · 심판청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재조사 결정 후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90일을 넘기는 경우가 많아 재조사 결과를 알기도 전에 불복부터 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박씨의 경우 재조사 결정 통지를 받은 지 88일 후 재조사 결과를 알게 됐다. 결국 박씨는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고,대법원은 최근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납세자 친화적인 대법원 판례 이어져

조세불복 절차에 대한 납세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화물운수업자 박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재조사 결정에 따라 후속 처분을 내렸을 때 납세자가 심사 · 심판 청구 등으로 다시 이의제기할 수 있는 기간의 시작일(기산일)에 대한 판례를 최근 변경했다.

기존 판례는 '재조사 결정을 통보받은 날'을 기준으로 했지만 이번 전원합의체에서 '재조사에 따른 후속 처분을 통지받은 날'로 바뀐 것이다. 재판부는 "재조사 결정에 따른 후속 처분 통지를 받은 후에야 납세자는 불복할 대상과 범위를 정할 수 있다"며 재조사 결과를 알게 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불복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에는 기업이 제기한 이의를 받아들여 과세관청이 한 번 과세처분을 취소했다가,이를 번복하고 똑같은 과세 처분을 다시 내리는 건 위법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기업의 이의신청 사유가 옳다고 인정해 세무서가 직권으로 경정처분을 취소한 다음,특별한 사유 없이 과거 처분을 다시 내렸다면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작년 12월엔 소득금액변동통지가 무효일 때 납세자가 낸 세금은 부당이득이 돼 반환청구가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 판례에 따라 과세처분 불복절차가 '납세자 프렌들리'로 다듬어질 것으로 법조계는 전망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의 소순무 변호사는 "과세관청이 같은 처분을 다시 내릴 때 엄격한 요건을 적용해야 한다거나,재조사 결과를 보고 불복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납세자의 불복절차상 권리 보장"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증가하는 조세불복

조세불복 절차를 밟는 납세자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과세전적부심사 접수 건수는 2005년 4431건에서 지난해 6237건으로,4년 동안 40%가량 증가했다. 국세청과 조세심판원이 집계한 심사청구 · 심판청구 접수 건수도 2008년 6120건,2009년 6731건으로 1년 사이 약 10% 증가했다. 과세에 불복하는 경우가 연평균 10%씩 늘어난 셈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강석훈 변호사는 "행정소송 전 단계에서 인용이나 채택 결정을 받으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문제가 해결되는 장점이 있어 납세자들이 선호한다"며 매년 과세 불복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를 분석했다. 강 변호사는 "행정소송의 경우 3심까지 가게 될 확률이 높아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세액이 크거나 관련 시행령에 위헌 소지가 있다면 소송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