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가폰' 뒤에 새겨진 '위드 구글'이 두려운 이유는
"이제는 애플이 아니라 구글이 걱정입니다. 구글이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힘을 갖게 되면 제조사들은 단순 하드웨어 생산기지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

애플이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폰 전쟁의 향배에 대해 묻자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장은 언제쯤 한국 기업들이 애플 아이폰을 따라잡을지 관심이지만 그는 애플이 아니라 구글의 움직임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했다.

실제 구글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을 모토로 운영체제(OS)를 내놓았지만 최근엔 효율을 앞세워 제조사들의 안드로이드폰 개발에 각종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올 연말 내놓을 새 운영체제(안드로이드3.0 진저브레드)부터는 제조사마다 달리해 온 휴대폰 사용자환경(UI)까지 구글 방식으로의 통일을 요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애플에 대한 반격을 시작한 국내 제조사들로서는 연합전선을 형성한 구글의 변심 가능성까지 살피며 전략을 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위드 구글 로고에 담긴 의미

팬택의 최신 안드로이드폰 '베가' 뒷면에는 '위드 구글(with Google)'이란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LG전자가 9월께 세계 100여개 통신사를 통해 내놓을 야심작 '옵티머스 원'도 같은 로고를 달고 나올 예정이다.

이 마크는 안드로이드를 가져다 쓰는 제조사들이 OS를 변형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획된 일종의 인증이다. 자사의 스마트폰 전략(디자인,호환성 등)에 부합하는 제품만을 선별해 로고를 사용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준다. 지난해 말 모토로라가 내놓은 '드로이드'가 첫 인증을 받았고 최근 관련 인증을 받은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글이 자사 브랜드 스마트폰인 '넥서스원' 후속 모델 개발을 포기한 것도 '위드 구글' 인증을 강화하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 CEO는 OS 업체가 휴대폰까지 만든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넥서스원 후속 모델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구글이 연말쯤 내놓을 진저브레드(3.0 예상)부터 제조사들이 구글의 UI만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안드로이드 OS로 '타도 애플'을 준비해 온 삼성 LG 등은 디스플레이,케이스,프로세서 등 하드웨어만으로 제품을 차별화해야 해 스마트폰 사업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전자업체 관계자는 "구글은 안드로이드폰이 전 세계에서 하루 16만대씩 팔릴 만큼 시장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종전의 개방 대신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며 "구글이 OS 통일성을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안드로이드폰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저브레드는 개방 전략 시험대

구글이 안드로이드 OS 통일성을 강화하려는 것은 호환성 문제 때문이다.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폰 차별화를 위해 UI 등을 달리 만들기 시작하면서 같은 안드로이폰인데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 동질성을 느끼기 어려워졌다.

구글이 새 OS를 내놓을 경우 업그레이드가 지연되는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구글이 만든 넥서스원 구매자들은 이달 초 안드로이드 최신 2.2버전 OS(프로요)가 발표되자 무선망에 접속,간단하게 관련 내용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반면 다른 제조사의 안드로이드폰 구매자들은 아직 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사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자사 UI 등을 새 OS에 맞게 바꿔줘야 하는데 이 작업이 수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출시된 '안드로1'은 제조사인 LG전자가 1.6버전에서 업그레이드를 중단해버려 인터넷 쇼핑,뱅킹 등 최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이 막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제조사들이 고유 UI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제조사들은 휴대폰 바탕화면 디자인만 보고도 어떤 회사 제품인지 알 수 있도록 UI 차별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터치위즈(삼성전자) 모토블러(모토로라) 센스(HTC) 같은 별도의 이름까지 만들어 알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구글이 제조사 고유 UI를 포기하라고 하면 안드로이드에 무게를 둔 스마트폰 전략을 재검토하는 제조사가 생겨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호환성 문제는 개방형 OS인 안드로이드 발전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문제인데 이를 이유로 UI까지 통일하면 개방의 장점이 사라진다"며 "연말께 나올 새 OS 진저브레드는 안드로이드의 개방 철학이 이어질지 알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