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야기된 공인인증서와 아이패드 도입으로 인한 전파법 논란은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정보기술(IT) 규제에 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줬고 유관 정부부처 사이에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규제개혁위원회는 소프트웨어 산업 규제 개혁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으며,지난 4월 지식경제부에서 IT/SW 규제 개선 민관 합동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IT 관련 규제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IT 분야는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빨라 규제 역시 주목을 받는다. 무어의 법칙 혹은 황의 법칙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채 1년도 못돼 구제품이 되어버리는 PC와 휴대폰을 바라보면 그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느낄 수 있다.

산업체는 이것이 곧 생존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빠른 변화만큼이나 신속한 연구 · 개발(R&D)로 대응한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개방혁신(open innovation)은 속도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업 내 · 외부의 다양한 R&D 성과를 활용,최소한의 시간에 필요한 기술을 획득하려는 산업체의 노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법률 혹은 정부안 조례 등으로 표현되는 규제는 이러한 속도에 맞춰 바뀌는 게 어렵다. 다양한 의견수렴 등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IT정책과 규제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규제의 폐해는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IT분야의 발전속도와 큰 차이가 생기고 사후약방문식 규제와 정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옛 정보통신부에 의해 도입된 모바일 플랫폼인 WIPI의 의무탑재 규제는 2005년 도입돼 2009년 폐지됐다. 휴대폰 간 플랫폼 호환을 통한 개발비 절감과 외국 플랫폼의 로열티를 회피하기 위해 도입된 이 규제는 아이폰 등 외국산 휴대폰의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됐다.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국내 스마트폰의 개발 경쟁을 지연시킴으로써 산업발전에 역효과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빠른 속도로 대응하기 힘든 IT 규제는 어떻게 돼야 할까?

첫째,IT 분야의 규제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 원리 원칙 중심으로 가야 한다. 빠른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원리 원칙에 해당하는 부분만 규제하고 세부사항을 포함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규제보다는 자율에 의해 운영될 수 있는 자정 시스템으로 가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포지티브 방식보다는 안되는 것들을 최소한 규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이 좋은 방향이다. 공인인증서의 특정기술방식을 의무화하는 규제는 더 나은 기술을 막아 스마트폰에서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한하는 한편 국내 온라인 거래 사이트의 해외 진출에 장애가 되고 있다.

둘째,이미 세계화된 IT분야 시장을 고려한다면 규제도 국제화돼야 한다. 외국에서 생산되는 게임과 소프트웨어,앱스토어는 세계적 유통망을 통해 바로 국내에 들어오고 있고 우리의 휴대폰은 세계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게임의 사전심의를 규정한 게임법 때문에 우리는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게임 카테고리가 없는 나라가 됐고 외국의 온라인 게임은 국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에서 판매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셋째,IT분야의 많은 규제 및 통제가 민간으로 이양돼야 한다. 급변하는 IT 분야의 속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민간기구로의 권한 이양은 정부의 부담을 줄이면서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인터넷의 주소체계를 관리하는 ICANN은 인터넷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기구이지만 인터넷 관련 중요 의사결정 및 관리를 하고 있다. 최소한의 원리원칙에 해당하는 항목을 전문가를 통해 민간 중심으로 관리감독함으로써 우리나라가 IT산업에서 규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모정훈 < 연세대 교수·정보산업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