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대만 '경제통합'] 차이완 리스크…반도체·LCD·화학·車부품 전방위 타격
중국 광둥성 선전과 둥관 일대에는 휴대폰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수천 개 밀집해 있다. 유명브랜드가 아닌 일명 '짝퉁폰'을 만드는 업체들이다. 삼성전자가 휴대폰을 내놓으면 일주일 내에 똑같은 모양의 휴대폰을 만들어 낸다.

이들이 만든 휴대폰은급속히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업체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은 또 있다. 이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이 대부분 대만제라는 것이다. 값싸고 질좋은 부품을 장착한 짝퉁 휴대폰으로 성장한 중국업체들이 제도권으로 진입할 경우 한국 휴대폰이 중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과 대만이 긴밀히 협력하는 차이완 효과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과 대만이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서명하게 됨에 따라 전자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 세계의 생산기지로 성장한 대만 업체들만 해도 버거운데 중국의 노동력과 자본이 결합하면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대만 기업들의 부상

몇 달 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두려워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대만의 훙하이(폭스콘)다"라고 보도했었다. 세계 1위 전자업체로 성장한 삼성 입장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일본 업체들보다 탄탄한 기술력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생산기지이자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대만업체들이 더 두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올해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성장성 높은 세계 100대 정보기술(IT)기업 명단에 한국기업은 삼성전기 단 한 곳뿐이다. 반면 중국과 대만은 각각 8개나 이름을 올렸다.

중국,대만계 기업의 성장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중국,대만계 기업의 세계 TV시장 점유율은 18.4%로 전년에 비해 7%포인트 높아졌다. 4년 전에 비해 3배로 급등하는 무서운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미국 2위 업체인 비지오와 하이얼 등이 선두에 서 있다.

여기에 최근 대만 정부의 태도변화도 한국 전자업체들의 불안감을 더하게 만들고 있다. 그동안 기술 유출을 우려해 중국 진출을 막아왔던 대만 정부가 올해부터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잇따라 허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AUO 등 디스플레이업체가 중국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했고 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TSMC도 중국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반도체와 LCD패널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동아시아 산업 경쟁질서 재편 예고

현재 상태로도 위협이 되고 있는 대만기업들이 ECFA를 통해 중국시장에 관세 없이 수출하면 한국 기업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많이 수출하는 품목은 대부분 겹친다. 양국 모두 1위가 반도체이고 2위가 디스플레이 패널이다. 반도체 부품,사무용기기 등도 경합하는 품목이다. 이 밖에 폴리카르복시산 등 화학제품의 수출도 양국 모두 많이 수출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ECFA가 단기적으로 한국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구도 재편으로 이어져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여기에는 일본이라는 복병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 경제계에서는 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해 대만계 기업과 제휴를 맺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반도체업체 엘피다는 대만업체들과 합작법인을 만들었고 폭스콘은 소니의 멕시코와 슬로바키아 공장을 잇따라 인수하며 일본업체들의 제품을 생산해주고 있다.

일본의 높은 제품 설계능력,대만의 생산기술,중국의 노동력이 결합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한국 기업이 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준 /송형석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