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한국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과 대만은 대중(對中) 수출 품목이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대만 제품이 무관세 혜택을 받게 되면 자연히 한국 제품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은 최근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첫 단추만 뀄을 뿐 본협상에 돌입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중국 시장,대만 제품 공세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의 대중 수출 품목 상위 20개 중 14개가 겹친다. 이들 14개 품목이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한다. 기계 석유화학 전자 등 한국의 주력 산업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대만이 '조기수확 리스트(관세 우선 인하 품목)'로 중국 측에 제시한 품목이 상당 부분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과 겹친다"고 밝혔다.

특히 대만산 디지털TV는 위협적이다. 한국산 디지털TV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08년 33.7%에서 지난해 36.1%로 늘었지만 중국 시장 점유율은 12.2%에서 7.7%로 낮아졌다. 유독 중국 시장에서만 약세를 보인 것은 대만 가전업체들이 중국 업체와 제휴해 현지 판매망을 확대한 결과다. 이른바 '차이완(중국+대만)' 효과다.

물론 디지털TV가 중국과 대만의 '조기 수확 리스트'에 포함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의 특수 관계를 감안할 때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추가 협상을 통해 관세 인하 품목이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가람 지식경제부 FTA팀장은 "중국과 대만이 ECFA를 통해 관세 인하 품목을 늘리면 수출 품목이 겹치는 한국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며 "한 · 중 FTA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 · 중 FTA는 이제 첫걸음

중국은 한국의 제1 무역 파트너다. 지난해 한국의 총 무역액(수출액+수입액) 6866억달러 중 중국의 비중은 20.5%(1410억달러)에 달했다. 유럽연합(EU,11.5%),일본(10.4%),미국(9.7%)보다 높다. 이런 측면에서 한 · 중 FTA 체결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한 · 중 FTA는 양국이 2004년 민간 공동 연구에 합의하면서 궤도에 올랐다. 2005~2006년 연구기관들을 앞세워 머리를 맞댔고 2007~2008년 다섯 차례에 걸쳐 산(産) · 관(官) · 학(學) 공동 연구를 했다.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한국 쪽 민감 품목인 농산물 개방에 대해 양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지지부진하던 한 · 중 FTA가 급물살을 탄 것은 지난 4월.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데다 중국과 대만의 ECFA 체결이 임박하면서 한 · 중 FTA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20일 국무회의에서 "공식 검토"를 지시한 데 이어 4월30일 상하이 엑스포 행사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만나 한 · 중 FTA 협상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5월 말 종료된 산 · 관 · 학 공동연구에서 '민감 품목'인 농산물에 대한 처리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감 품목에 대한 해법은 정치적으로 해결돼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업종 간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제조업 내에선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전자 자동차 철강 전문기계 등 한국이 강점을 지닌 분야는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석유화학 제품은 가격에 민감하고 중국의 자급률이 낮아 한 · 중 FTA로 관세가 낮아지면 최대 수혜업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섬유 의류 생활용품 범용제품 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우 값싼 중국 제품이 밀려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정부 출연 연구소 관계자는 "한 · 미 FTA와 한 · EU FTA의 경우 산 · 관 · 학 공동 연구 없이 민간 공동 연구 결과만으로 협상에 착수한 반면 한 · 중 FTA는 그렇지 못하다"며 "그만큼 실제 협상까지 난항이 예상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