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공고를 거쳐 일본 오사카대에서 로봇공학 박사 학위를 딴 주상완 씨앤엠로보틱스 사장(52)이 일본 모 대학의 교수직 제의를 뿌리치고 한국에서 창업한 것은 수출을 통해 조국에 조금이나마 기여해 보겠다는 포부가 있어서였다. 7년 동안 고생 끝에 그는 도요타자동차에 200여대의 센터링 머신을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주 사장은 요즘 부푼 꿈에 차 있다. 국내외 자동차업체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발목을 잡는 게 있다. 이는 기술도 아니요 자금도 아니요 인력도 아니다. 바로 교통체증이다.

그는 아침마다 임전 태세를 갖춘다. 회사인 구로디지털밸리 3단지로 가기 위해 서울 서초동 자택을 출발해 공단 초입인 '가리봉 5거리'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20분.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마리오아울렛 사거리를 지나 '수출의 다리'를 건너 철산교 직전에서 우회전하기까지 불과 1㎞가량을 가는 데 30분이 넘게 걸린다. 이곳은 도로가 아니라 주차장이다. 출퇴근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낮시간도 마찬가지다. 바이어를 회사로 초청하기도 겁난다.

편도 2차로인 수출의 다리는 유일한 출근길이다. 서울 시내쪽에서 구로디지털밸리 3단지로 가려면 철도(국철 1호선)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이게 바로 수출의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거대한 아울렛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지난 10년 동안 천지개벽했다. 100개의 '아파트형 공장(지식산업센터)'이 들어서면서 입주기업이 1999년 말 597개에서 2009년 말 9415개로 15.7배 늘었다. 종사자는 2만9639명에서 12만632명으로 4배 증가했다. 입주기업은 더욱 늘어 올 들어 1만개를 돌파했다. 첨단인텔리전트 빌딩이 즐비하고 곳곳에 멋진 노송과 휴식공간 헬스클럽 영어학원이 들어섰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1970년대의 우울한 구로공단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도로는 수십년 동안 달라진 게 없다. 교통체증 때문에 입주기업과 근로자들이 입는 손실은 계산하기도 힘들다.

장 · 단기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첫째 가산디지털단지역(국철 1호선)을 중심으로 단지 내 구석구석을 순환하는 마을버스를 대거 증차하는 것이다. 순환버스만 자주 다니면 차를 갖고 오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둘째,안양천변 서부간선도로에서 구로디지털밸리로 쉽게 진출입할 수 있도록 램프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셋째,광명시와 시흥대로를 연결하는 지하차도의 건설이다. 서울시내에서 서해안고속도로나 제2경인고속도로를 타려고 할 때 구로디지털밸리를 거치지 않고 논스톱으로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를 짜내면 방법은 있다. 문제는 의지다. 이를 위해선 서울시 금천구 구로구 등 지방자치단체와 산업단지공단 측이 머리를 시급히 맞대야 한다. 이공계 석 · 박사급 인재들이 몰려 있고 IT(정보기술)산업 중심지로 발돋움한 구로디지털밸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수출을 통해 한국을 일류국가로 도약시킬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출의 다리까지 가는 길이 원활해지지 않는다면 구로디지털밸리의 수출 증대는 도달하기 힘든 다리가 될지도 모른다. 마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 '머나먼 다리'에서 나오는 독일과 네덜란드 국경의 다리처럼.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