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주기술 강국 저력 보여줘…나로호 실패한 우리나라도 더 분발해야

[Global Issue] "역정 뚫고 7년만에 돌아왔다"…日 우주선 '하야부사(송골매)'의 기적
나로호의 2차 발사 실패로 시름에 잠긴 지 사흘 만인 지난 13일,이웃나라 일본에선 우주미아가 될 뻔했던 한 무인우주선이 7년 만에 지구로 돌아오면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주인공은 바로 2003년 발사됐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송골매)'였다.

하야부사는 일본 최초의 소행성 탐사선으로 정식 명칭은 'MUSES-C'다.

하야부사는 2003년 5월 일본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M5로켓에 실려 우주로 향했다. 목적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이토카와'에 착륙해 모래를 실어오는 것이었다.

하야부사는 2년간 약 20억㎞를 여행한 끝에 2005년 11월 이토카와에 착륙했다.

착륙 성공으로 연구원들이 지구에서 환호성을 지를 때쯤 문제가 일어났다.

자세 제어용 화학 엔진에서 연료가 샌 것이었다.

그 때문에 자세제어장치 3대 중 2대가 망가졌고 동력장치인 화학엔진 12대 모두 기능을 상실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구와 통신마저 두절됐다. 눈과 다리를 잃은 하야부사는 꼼짝 없는 '우주 미아'로 전락했다.

이후 7주간 통신 불능에 빠졌고 지구에서는 "이제 끝났다"는 탄식이 퍼졌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연구 책임자인 가와구치 준이치로 교수는 당시를 "의지와 인내와 신에 의존한 나날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JAXA 측은 하야부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연락 두절 7주 만에 하야부사의 실낱같은 신호를 잡아냈고 4개월간의 교신 끝에 동력장치를 비상용 이온엔진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해 귀환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온엔진을 돌리기 위해 4개월에 걸쳐 태양전지를 충전했다. 급속 충전할 경우 파손된 전지 4대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야부사는 그동안 미세한 태양광 압력을 이용해 미아 신세를 면했다.

그러나 비행속도가 떨어지면서 귀환 시기는 계속 지연됐다.

부품의 노화까지 겹치면서 전지와 엔진의 손상도 일어났다.

지난해 11월에는 비상용 이온엔진 4기 중 3기마저 정지했다.

JAXA 연구원의 아이디어로 예비 엔진 2기를 연결해 1기 역할을 하게 하는 비상수단까지 동원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13일 오후 11시7분쯤 하야부사에 탑재된 캡슐은 기체와 분리돼 호주 우메라 부근에 착륙했다.

당초 예정보다 3년이나 늦은 지구 귀환이었다.

하야부사는 험난했던 여정만큼 귀중한 기록도 세웠다.

하야부사는 달 이외의 행성과 지구 사이를 왕복한 첫번째 탐사선이다.

또 우주에서 약 60억㎞(지구~태양 거리인 1억5000만㎞의 약 40배)를 비행하는 '대장정'을 벌였다.

JAXA는 하야부사에서 분리된 캡슐 내부에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암석 표본을 분석하면 지구 탄생의 비밀을 푸는 실마리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하야부사의 귀환으로 우주기술 분야에 큰 자신감을 얻게 됐다.

아울러 예기치 않은 고장에 부닥칠 때마다 기적적으로 회생해 결국 임무를 완수한 하야부사가 20년 장기 불황 등 어려움에 처한 일본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줬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검증된 일본의 우주기술력을 제조업에 이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하야부사의 역경을 그린 JAXA 홈페이지의 '하야부사군의 모험일지'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귀환을 앞두고 공모한 응원 메시지는 두 달 동안 2000건에 이른다.

파편채집 캡슐을 분리해 호주 사막에 떨어뜨린 뒤 대기권에 진입하며 불타버린 하야부사의 고난을 넘어 산화하는 모습이 "불황에도 최선을 다하려는 일본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주 강국의 꿈을 꾸었다.

일본은 과거 태평양전쟁에 대한 책임 때문에 우주항공 기술 개발에 관해서는 미국의 강력한 견제와 감시를 받았다.

그렇지만 일본은 포기하지 않았다.

1920년 첫 비행기 제작에 성공한 만큼 그 연장선에 있는 우주항공 개발에도 끈기를 갖고 도전했다.

오랜 시련 끝에 1975년 처음으로 자체 기술로 개발한 N1로켓 발사에 성공했지만 개발 비용이 비쌌고 발사 성공률도 낮았다. 개량을 거듭해 1981년엔 N2,1986년엔 H1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3년 H2A로켓 발사에 실패하면서 일본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2007년 첫 달탐사 위성 '가구야'를 쏘아 올리면서 일본은 다시 한번 축적된 저력을 과시했다.

일본은 현재 연간 3~4건의 로켓을 쏘아 올린다.

2011년으로 예정된 한국의 첩보위성 아리랑 3호 발사 서비스까지 따냈다.

전후 50여년간의 우주 개발 노력 끝에 외국의 위성을 발사해주는 상업화에도 성공한 것이다.

제조 기술도 뛰어나 발사 비용도 크게 줄였다.

일본의 로켓 제작을 도맡고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항공우주시스템제작소는 "로켓은 초정밀 기계이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긴 만큼 고도의 전문성과 철저한 기술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야부사 귀환의 1등 공신이었던 이온엔진도 일본 우주기술의 쾌거로 평가된다.

이온엔진은 불활성기체인 크세논을 이온화해 초속 30㎞의 초고속으로 분사해 추진력을 얻는 동력장치로 지금까지 위성의 보조 동력장치로만 사용돼 왔다.

하지만 일본 NEC가 독자 개발한 하야부사의 이온엔진은 1만8000시간 가동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14년 하야부사 2호를 발사해 다른 소행성 탐사에 나서는 한편 이번에 검증된 기술을 대대적으로 보완해 상업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우주기술 격차는 얼마나 될까. "일본은 나는데 한국은 기어간다"는 우주기술 전문가들의 평으로 집약된다.

일본이 세계 최정상급 대열이라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한국은 이제 겨우 700~800㎏ 무게의 '아리랑 위성' 등 저궤도 원격 탐사용 위성을 자력 개발하는 수준이다.

거기에 나로호를 발사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발사대 기술,나로호 발사체 2단의 기술 일부를 습득했을 뿐이다.

발사체 로켓 기술은 일본에 비해 황무지나 다름없다. 연간 우주기술 예산도 일본의 7분의 1 수준이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