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파필터(미세 먼지를 흡수하는 방진 장치) 8개가 돌아가는 렌즈 조립 라인.불투명한 칸막이 안에서 방진복을 입은 7~8명 남짓의 여직원들이 렌즈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50~200㎜ 망원렌즈를 생산하는 이 라인에서는 무려 300여종의 부품을 사람 손으로 직접 조립한다. 먼지 하나도,부품 사이의 미세한 유격도 허용되지 않는 정밀 과정인데도 20여분 만에 망원렌즈 하나가 완성됐다.

삼성전자 창원사업장이 '광학 독립의 꿈'에 부풀어 있다. 지난 30년간 일본 독일 업체 등으로 제휴선을 바꿔오면서도 이루지 못했던 꿈이다.

◆일본 100년 광학 역사,30년 만에 추격

렌즈 교환식 디지털카메라 'NX10'을 생산하는 이 사업장 직원들의 손길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NX10 주문이 폭발적으로 밀려들고 있어서다. 지난 3월 출시된 이 제품은 국내 중고급 미러리스 카메라(카메라 내부에 들어가는 거울을 없애 소형 · 경량화시킨 제품) 시장을 석권하며 출시 4개월 만에 국내외 판매량 6만대를 넘어섰다. NX10은 삼성이 전문 카메라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이미지센서,카메라 본체,교환식 렌즈까지 모두 독자 기술로 만든 첫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NX10을 내놓으면서 일본,유럽 업체들이 독식해 온 교환 렌즈까지 직접 설계해 선보였다. 해외 업체들의 렌즈를 가져다 쓰는 데서 탈피,말그대로 광학 독립을 이루겠다는 의지다.

삼성이 교환 렌즈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것은 생산 자동화다. 창원 사업장에 금형,성형,사출 등으로 이어지는 자동화 공정을 마련한 뒤 작고 정밀한 카메라 부품을 모두 직접 제작하고 있다. 사람 손으로 직접 유리 렌즈를 깎는 데 강점을 보여온 일본 업체들의 기술을 자동화로 상당 부분 대체한 것.손영택 디지털이미징사업부 글로벌 제조팀 상무는 "기계로 한번에 24장의 렌즈를 동시에 찍어내고 최대 50㎜ 크기의 렌즈까지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해외 광학 전문업체들이 100년 동안 이룬 것을 부품 자동화 생산 기술로 30년 만에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광학 독립 실현' 머지않았다

삼성의 카메라 도전사는 시련의 과정이었다. 1979년 일본 미놀타의 기술을 빌려 시장에 처음 진출했고,1995년에는 독일 롤라이와 일본 유니언광학을 인수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도 카메라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것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독려 때문이다. 이 회장은 반도체 부문에서도 광학장비(포토장비)가 핵심 기술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카메라 사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지시했다. 2003년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에서는 "그룹의 역량을 모아 디지털 카메라 일류화를 조기에 달성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삼성은 지난해 일명 '똑딱이'로 불리는 콤팩트 카메라 시장서 10%대의 점유율로 세계 3위에 올랐다. 이제 전문가용 시장으로 입지를 확대하기 위해 미러리스 카메라를 주목하고 있다. NX10은 기존 DSLR 카메라보다 두께는 절반,무게는 3분의 1로 줄여 휴대성을 높인 새로운 컨셉트의 제품이다. 소형,경량의 장점을 살린다면 DSLR에만 치중해 온 일본 캐논,니콘과 차별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지난해까지 수십만대에 불과했던 미러리스 글로벌 시장 규모는 올해 140만대로 늘고 2014년에는 1300만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림푸스,파나소닉에 이어 올해 삼성전자,소니까지 제품을 내놓으면서 이를 찾는 사람들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강건모 디지털이미징사업부 개발팀 상무는 "광학 독립의 꿈을 위해 우선 미러리스 카메라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렌즈를 개발하고 제작할 능력을 갖춰나갈 계획"이라며 "NX10의 성공이 이어진다면 광학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응용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