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 검사장비를 생산하는 박재규 동아엘텍 사장은 2008년 고민에 빠졌다. 몇 년째 매출이 150억원대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요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마저 2009년에는 투자계획이 거의 없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해법은 '중국'이었다. LG디스플레이 납품을 통해 검증받은 검사장비의 성능을 믿고 중국 LCD업체인 BOE,TCL을 집중 공략하자는 전략을 세운 것.1년을 공들인 결과 동아엘텍은 지난해 중국 수출 물량을 100억원에서 290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릴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회사 전체 매출도 335억원으로 2008년보다 220% 늘었다.

중국 시장 공략의 비법은 '관시(關係)'였다. '관시'는 '관계'를 뜻하는 중국어로 현지 비즈니스에서 매우 중요하다. 박 사장은 중국에 처음 수출을 시작할 때부터 고객사 임원들뿐 아니라 현지 엔지니어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 애썼다.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동아엘텍의 중국 진출에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뿐만 아니었다. 박 사장은 회사 규모나 담당자 직급에 관계없이 고객사의 요청은 반드시 현지에서 대응하도록 했다. 중소기업으로는 파격적으로 중국 7개 지역에 직원을 상주시켜 고객사의 애프터서비스 요청에 실시간 대응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팔아본들 비행기 삯도 못 뽑는 3만달러짜리 검사기 1대 구매 문의를 받고도 직원들은 매번 중국으로 직접 찾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중국 영업을 담당하는 이창완 과장은 "작년에만 중국을 70번 갔고 항공 마일리지만 13만마일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과 정성 끝에 동아엘텍이 구축한 '관시'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밀착 대응에 반한 현지 엔지니어들은 '동아엘텍 홍보대사'를 자청했다. 중국 TCL은 "동아엘텍이라면 믿을 수 있다. 모듈라인 전체를 동아엘텍이 공급해 달라"고 요청해오기도 했다. LCD 검사장비만 만드는 동아엘텍에 1000만달러 규모의 모듈라인 일괄 공급을 맡긴 것이다.

이러한 고객 밀착형 경영의 배경에는 아픈 과거가 숨어 있다. 그는 "창업 전 근무했던 회사가 주요 고객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한순간에 부도나는 것을 보면서 경영에선 밑바닥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라는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로부터 얻은 경영철학은 고객과의 약속이라는 기본만 지켜도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올해 동아엘텍의 매출 목표는 400억원.박 사장은 "이미 수주가 확정된 것만 상반기 200억원 정도"라며 "주요 투자가 하반기에 이루어지는 만큼 목표 달성은 문제없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에서 성공으로 동아엘텍은 새로운 사업 확장 기회도 얻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50억원을 들여 OLED 증착장비를 만드는 선익시스템을 인수했다. 박 사장은 "우리나라에서 OLED용 증착기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선익시스템을 포함해 세 군데밖에 안 되는데 그 가운데 기술력은 선익시스템이 가장 낫다"며 "OLED 시장이 열리면 당장 큰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일본 부품 · 소재회사 인수도 추진 중이다. 박 사장은 "앞으로 LCD와 OLED의 모든 생산공정을 아우르는 종합 부품 · 장비 공급회사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