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L씨(23)는 검도장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 뒤 자전거로 학교에 간다. 수업이 끝나면 강남역 H어학원에 간다. 강좌가 끝나면 강남역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친구들과 강남역에 위치한 H주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L씨를 잘 아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저 평범한 대학생의 일상이라고 했을 게다. 문제는 위의 정보가 모두 위치 기반 서비스(LBS)인 '포스퀘어(foursquare)'에 공개돼 있다는 점이다. L씨는 자신이 언제 어디에 있다는 사실을 포스퀘어에 올린다. 그리고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L씨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다.

◆"내 개인정보,얼마쯤은 공개해도 좋아"

그렇다면 L씨는 포스퀘어에 올리는 일상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답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L씨가 공개하는 일상은 포스퀘어,이것과 연동하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SNS)에서 친교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어느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했느냐는 사실은 L씨의 온라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재료다. 다른 이용자들은 L씨가 온라인에 기록하는 일상을 보며 L씨와의 공통점이나 이야기를 나눌 만한 화제를 찾을 것이다. 이는 오프라인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일상생활을 말하는 대상이 친구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온라인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LBS 연관 서비스가 봇물을 이루면서 프라이버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들 서비스의 특징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에 대해 기록하고,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게임과 사교의 장으로 기능한다는 데 있다. 한국에서는 초창기 단계이지만 해외에서는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카페 등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사람이 흥얼거리는 소리를 인식해 자동으로 음악을 찾아주는 기능으로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샤잠(Shazam)'이 대표적인 예다. 샤잠은 어떤 음악을 어디에서 찾았는지 공유할 수 있는 '샤잠 커뮤니티'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포스퀘어가 해당 위치를 방문한 사람이 '메이어(시장)'가 되는 일종의 '깃발 꽂기'라면 샤잠 커뮤니티는 훌륭한 음악을 추천하는 사람이 대접받을 수 있다는 '인정 심리'를 노린 셈이다. 이와 유사한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 프로그램)인 '미소TV(miso TV)'는 음악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있는 TV 영화 동영상의 내용을 공유하는 서비스다. 미소TV는 포스퀘어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연동돼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친구들과 정보를 나눌 수 있다.

트위터도 지난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공식 트위터 개발자 컨퍼런스 '처프(Chirp)'에서 LBS와 유사한 '관심사(Points of Interest)'라는 서비스를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실제 장소를 트위터에 표시할 수 있으며, 특정 장소에 관한 글만 따로 모아 보여줄 수도 있다. 또 '영화 보는 중' '식사 중'과 같이 자신의 현재 상태를 남길 수도 있다. 페이스북도 이달 말 열리는 자사 개발자 컨퍼런스 'f8'에서 LBS 기능을 공개할 계획이다.

◆프라이버시 의미가 바뀐다

이렇게 LBS 서비스가 각광받는 이유는 한마디로 '돈'이다. 위치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면 이용자의 생활방식과 취향을 파악해 '맞춤형'으로 광고가 가능하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광고가 정밀유도 미사일처럼 타깃 소비자들에게 내리꽂히는 꿈 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셈이다. 앱 개발업체 입장에서 이용자들이 지금까지 프라이버시로 여겨졌던 정보를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만 있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 쥔다는 얘기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생각은 몇 년 새 크게 변화하고 있다. 2008년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미국의 10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프라이버시 문제를 염려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41%에 불과했다. 불과 10년 전인 1998년에는 미국 10대 가운데 80%가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인터넷 쇼핑을 망설인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 10대들은 자신이 무엇을 샀는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앞다퉈 자랑하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PEW는 지난해 조사 결과 인터넷에 자신의 프로필을 올린 미국인 가운데 40%가 프라이버시 설정 자체를 꺼버려 누구나 자기 정보를 볼 수 있게 해놓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어윈 알트만 유타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당사자가 자신을 어느 정도 공개할지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프라이버시는 유지된다"며 "문제는 프라이버시 자체가 아니라 공개 과정과 수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요 인터넷 업체들이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프라이버시 공개를 유도 또는 강제해 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더 간편하면서도 개별 이용자의 자율권을 보장하기 위해 프라이버시 환경 설정을 바꾸겠다"면서 이용자의 이름,성별,거주 도시,프로필 사진 등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인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전통적인 프라이버시는 더 이상 사회의 규범이 아니다"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에릭 슈미트 구글 CEO는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면 처음부터 인터넷에 올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무분별하게 개인정보를 올린 이용자의 과실이 문제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