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여유자금을 투자하기보다는 현금으로 보유하거나 주주배당에 쓰는 비중이 늘고 있다. 그 결과 건물 · 기계장치 · 차량운반구 등 기업의 생산설비가 빠르게 노후화되는 등 생산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상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1일 '한국기업 자금운용 보수화 경향 뚜렷'보고서에서 12월 결산법인 1534개사의 자금운용과 유형자산 투자 동향을 분석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은 2000년 말 31조1751억원에서 작년 말 104조3617억원으로 증가했다. 9년간 연평균 14.4%씩 늘어난 셈이다.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7.1%)이나 전체 자산 증가율(8.0%)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유형자산(토지 제외) 보유 규모는 2000년 말 285조4000억원에서 작년 말 395조원으로 연평균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0년 말에는 50.1%에 달했지만 작년에는 34.6%로 낮아졌다.

2000년에는 감가상각 대상 자산의 평균 사용연수가 3.9년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7.9년으로 두 배 늘었다. 총투자금액 대비 감가상각누계액으로 계산한 생산설비 노후화율은 2000년 35.5%에서 작년 56.0%로 2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기업들이 보유한 생산설비가 전체 사용가능 기간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배당금 지급액은 연평균 14.5%씩 증가했다.

박 연구위원은 "미국 일본 중국 대만기업들과 비교한 결과 국내 기업의 자금 운용이 가장 빠르게 보수화됐고 생산설비 노후화도 상대적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2000년 국내기업 생산설비는 비교국가 기업 중 노후화율이 가장 낮았지만 지금은 설비 측면의 경쟁력이 과거보다 약화됐다"며 "이는 기업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기반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보수적 자금운영 기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