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안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즐겨 사먹는 호두과자하면 떠오르는 곳이 천안이다. 1934년 천안에 거주했던 한 주부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호두과자는 70년이 넘도록 맛과 모양을 원형 그대로 간직한 국내 최장수식품으로 꼽힌다. 어느덧 천안의 명물이 됐다.

3일 안팎의 짧은 유통기한 탓에 천안을 중심으로 역세권에서만 취급하던 호두과자를 '전국구 식품'으로 만든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산업화와 함께 거미줄처럼 깔리기 시작한 고속도로망.여기에 1972년 창업 후 38년 세월 동안 호두과자란 한우물을 파면서 전국 유통의 물꼬를 튼 대신제과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대신제과는 현재 고속도로와 철도매점 등 전국 휴게소 판매물량의 90% 이상을 납품하고 있다.

1994년 작고한 민항기 회장은 직장생활만으로 네 명의 자녀를 키우기 힘들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철도청 공무원이었던 고 민 회장은 직장생활 인맥만 활용하면 쉽게 판로를 뚫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보유 부동산을 담보로 당시 돈 3억원을 차입해 호두공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호두과자만 만들면 거저 팔것이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대신제과가 기존 납품업체를 제치고 홍익회와 거래를 트기까지는 3년여 시간이 걸렸다. 시작하자마자 시련의 시간을 보낸 것.이에 따라 민 회장과 부인 정수복 여사는 철도역을 제외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그때 떠올린 게 고속도로 휴게소.갓 구워낸 호두과자를 트럭에 싣고,당시 3개뿐이던 옥산 망향 천안 등 고속도로 휴게소를 돌았다. 트럭에 가득 실은 호두과자를 팔고나면 손에 쥔 돈은 10여만원."먹어보고 사시라"는 게 마케팅의 전부였지만 맛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천안 광덕산에서 나는 호두와 팥 등 재료를 매입하고,직원들 월급 주고나면 항상 자금사정은 빠듯했다.

1975년 홍익회 납품을 시작으로 회사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고속도로가 뻥뻥 뚫리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등 납품처가 늘어 회사매출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대신제과는 현재 철도역뿐만 아니라 150여개 고속도로 휴게소에 호두과자나 팥앙금,반죽 등 반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여행 · 레저산업의 부흥과 함께 천안 호두과자가 알려지면서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했지만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상당수 영세업체들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민경묵 대표(45)는 "호두과자 한 품목에 집중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에다 최고급 재료만을 엄선해 사용한 게 회사 성장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생산량만으로 턱없이 부족해 한 달 평균 7~8t의 호두는 미국에서,팥은 중국 등에서 수입하지만 최고급만을 엄선해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두과자 제조 등에 대한 노하우를 묻는 거듭된 질문에 민 대표는 "오로지 38년 동안 호두과자만 만들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간단한 말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며 "호두와 팥앙금은 거의 똑 같은 비율을 유지하는 게 대신제과만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라고 귀띔했다.

민 대표는 1994년 9월 부친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경영일선에 참여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후 박사과정을 밟던 민 대표는 마케팅 총괄 상무로 3년간 어머니를 보좌하다가 1996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경영학 박사인 민 대표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회사 생산시설을 현대화시키는 등 회사 체질과 조직을 차근차근 바꿔나갔다. 천안에 있는 660㎡(약 200평) 규모의 공장을 4950㎡로 증축한 게 대표적이다.

도로망 확충과 여행레저문화 확산으로 호두과자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판단은 주효했다. 난립하던 영세업체들이 도산하면서 시장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민 대표 취임 당시 30억원 수준이던 회사매출은 지난해 149억여원으로 늘었고,매년 10% 이상씩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데다 판매처를 넓힌다는 차원에서 직영점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현재 대신제과는 고속도로휴게소 10곳과 철도역사 10곳에 직영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의 니즈가 바뀌고 있는 것을 간파하고 다양한 퓨전 호두과자를 개발한 것도 젊은 CEO(최고경영자)의 작품이다. 2004년 금산휴게소에 그 지역 특산물인 인삼을 갈아 반죽한 '인삼 호두과자'를 출시했는데,일반 호두과자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매월 1억원어치 이상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소비자 반응에 고무된 민 대표는 제주지역에 '한라봉 호두과자'를 출시하는 등 지역특산품과 호두과자를 결합한 '퓨전 호두과자'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 경영학에 정통한 민 대표이지만 호두제조기법을 포함해 몇 가지 '가업전통'은 오히려 소중하게 보존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창업 이후 지켜온 '무정년 제도'.현재 100여명의 직원 중 최고령자는 74세이고,30년 이상 장기근속자만 15명에 달한다. 정년 없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하는 이 같은 가족주의 경영은 수많은 위기상황을 뚫고,오늘날 대신제과가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는 게 민 대표의 생각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