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는 지난 1월27일 아이패드를 발표하면서 'magical(마술 같은)','revolutionary(혁명적인)','unbelievable(믿을 수 없는)'이란 말을 반복했다. 그때는 다들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3일 아이패드 판매가 시작된 뒤엔 달라졌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판도를 바꿔놓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했고,테크크런치 창업자는 "아이패드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다"고 했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로 또 세상을 뒤집을 셈인가. 대단한 기업이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는 외계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잡스는 외계인이고 심심할 때마다 자기 행성에서 가져온 이상한 물건을 꺼내놓는다"는 얘기인데 전혀 우습지가 않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우리한테는 왜 잡스 같은 창의적인 기업인이 없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필자는 2년 동안 편집국 밖에 머물면서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했다. 날마다 해외 테크놀로지 동향을 파악해 블로그에 올렸다. 지난달 '전문기자'로 취재현장에 복귀한 뒤에는 날마다 놀라고 있다. 웹 2.0 세상에서 웹 1.0 세상으로 돌아왔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이렇다. 어느 기업 사장이 정부 부처에 간다고 하자 부하직원들이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우황청심환 드시고 가세요. 그리고 뭐라고 야단을 쳐도 토를 달지 마세요. " 그런데 한 시간 두 시간 책상을 치면서 고함을 질러대는 바람에 참지 못했다고 한다. 뭔가 큰 잘못을 했던 모양이다. 이유야 어떻든 웹 2.0 시대에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앞다퉈 대관(對官)업무 조직을 키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업들이 조직적으로 정부 동향을 파악하고 공무원들과 친분을 쌓다 보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커진다. 왜 이렇게 할까? 규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신고만 하면 되는 일도 담당 공무원이 신고를 받아주지 않으면 허사다. 담당 공무원 전화 호출에 중소기업 사장이 해외출장을 포기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뿐이 아니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94개 국가 중 사전심의 때문에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를 폐쇄한 나라는 'IT 강국' 대한민국뿐이다. 모바일 게임을 사전심의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정부가 관련법 개정안을 올린 게 2008년 11월이다. 그러나 1년반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제대로 토론해 본 적이 없다.

기업은 또 어떤가. 언제부턴가 '슈퍼갑(甲)'이니 '울트라 슈퍼갑'이니 하는 말이 나돈다. 사업을 하다 보면 갑을관계가 생기게 마련이다. 힘을 쥔 쪽이 '갑'이다. 갑 중에서도 막강한 갑을 '슈퍼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슈퍼갑마저 설설 기게 하는 '울트라 슈퍼갑'도 있다. 파트너를 노예로 생각한다는 얘기인가. 입으로만 상생을 떠든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웹 2.0은 개방과 참여와 공유를 지향한다. 우리나라 테크놀로지 생태계를 보면 개방이 아니라 폐쇄,참여가 아니라 강요,공유가 아니라 독점을 지향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태계에서는 애플 같은 기업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인이 나오기 어렵다. 우리 기업이 신제품을 발표하는 날 전 세계 언론이 속보 경쟁을 벌이고 소비자들이 밤샘을 하며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