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명:사내 빈대 *죄목:일 안하고 놀고 먹기,남의 공(功) 가로채기,책임 떠넘기기,팀워크 깨트리기,대안 없이 불평하기*주의사항:건드리면 되레 화냄.왕따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도 함.

어느 조직에든 있다. 놀고 먹으며 월급 축내는 무임승차자,'프리 라이더(free rider)'말이다. 우리말로 '빈대',또 다른 외국말로 '바이러스족'이라 불리기도 한다. 독자 생존능력 없이 다른 생명체에 기생하는 생존방식을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어느 연기파 영화배우는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며 자신의 연기력을 낮춰 겸손해 했다. 하지만 정작 숟가락을 슬쩍 얹는 이들은 "조직을 위해 밥상을 차린 게 나"라고 떠벌리기 일쑤다.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의 김 과장,이 대리들에겐 골치아픈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딱히 방법도 없다. 같은 월급쟁이로서 "나가 달라"고 말하거나,얼굴 붉혀가며 싸울 처지도 안 된다.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김 과장,이 대리들이다.

◆눈치코치 없는 '무뇌아형'

중견 기업에 다니는 이모 대리(31)의 별명은 '미스터 밉상'이다. 동료들은 다 알지만 정작 이 대리 자신만 모르는 별명이다. 이 대리가 이런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점심시간마다 반복하는 얄미운 행동 때문이다. 팀내에서 막내급인 신분을 악용(?),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분위기를 몰아간다. 어차피 선배들이 돈을 내는 시스템이라 애당초 자금사정을 고려한 메뉴 선정은 안중에도 없다. 점심부터 고기를 굽는 일도 다반사다.

돈을 내는 선배 입장에선 싫지만,먹는 것 갖고 시비를 걸기도 마땅치 않다. 회식자리도 메뉴에 따라 가려서 참석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안심 치맛살이 등장하면 4~5인분을 뚝딱 해치운다. 하지만 술만 마셔대는 서민형 회식자리는 "설사가 심하다"거나,"제사가 있다"며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 나간다.

식탐정도라면 '개인의 기호'라고 봐줄만도 하다. 문제는 조직이 함께 떠안아야 할 궂은 일에도 온갖 핑계로 꽁무니를 빼기 일쑤라는 점이다. 거래처의 고위 임원을 접대하는 자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알코올기 전혀 없이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는 뻘쭘한 상황에서 막내 기질을 발휘해 한두마디 유머를 터뜨려 분위기를 띄울 만도 하건만,멀찍이 앉아서 술자리 내내 문자질이다. "요즘 한약을 먹어 술을 자제하고 있다"는 핑계와 함께 말이다.

◆남이 차린 밥상에 슬쩍…'숟가락형'

상사가 무임승차자라면 부하들은 곤혹스럽기 그지 없다. 의료기기 회사에 다니는 박정현 과장(34)이 그런 경우다. 그는 쉰 줄에 가까운 직속상사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상사가 외국어 젬병인 까닭이다. 상사는 외국어 관련 일만 생기면 "외국어 잘하는 요즘 신세대들이 수고 좀 해줘"라며 너구리처럼 일을 떠넘긴다. 처음엔 '내 능력을 인정해 주는구나'싶어 공들여 일을 대신 해줬다. 그 일이 반복되면서 아예 외국어 관련 업무는 으레 박 과장에게 맡겨 버리는 게 아닌가.

상사는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자리를 확실히 보존한다. 오랜 근속경력을 무기로 사내 네트워크를 정치적으로 제대로 활용하는 덕분이다. 심지어 업무성과를 인정받아 연말 보너스를 가장 많이 받기도 한다. 박 과장은 "실적을 가로채 보너스를 챙기는 것은 이해해줄 만하다"면서도 "그 돈으로 값 비싼 골프채를 장만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차라리 잠자코 있지… '평론가형'

중견 기업에 다니는 윤모 과장(37)은 회사 내에 적이 많다. 조직 내 결정에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부서 회의 때마다 그는 언제나 "이의 있다"며 토를 단다. 아무리 좋은 제안이 나와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법이 없다. "그런 일은 회사의 사시(社是)에,미래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추진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반대한다.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철학,비즈니스의 원칙 등 도덕 선생 같은 '고담준론'만 늘어놓으면서 현실적 대안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하지만 야근수당,휴무수당 등에서 1만원이라도 오류가 생길라치면 꼬박꼬박 총무부에 따지는 게 그다. 한 동료는 "조용히 남의 일에 얹혀 가기만 하는 무임승차자라면 참고 넘어가겠지만,사사건건 남의 일에 트집까지 잡아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게 문제"라며 "무임승차자들은 대체로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잘 모르고 자기가 잘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무임승차자,이렇게 대응하라

국내 한 제약회사에 다니는 김모 대리(32)는 최근 눈엣가시 같던 팀내 '빈대 3총사'를 한 방에 날려 버렸다. 하루종일 화장 고치기,간식 먹기,블로그 관리하기,인터넷 쇼핑 · 게임 등으로 소일하는 세 명의 부하 직원에게 '일 폭탄'을 떨어뜨린 것.

방법은 이랬다. 그가 잡은 'D-데이'는 회사 체육대회.술잔을 들고 전 부서를 돌곤 하는 한 임원과 만나는 자리에서였다. 팀장이 "이번에 김 대리가 큰 일을 했다"고 소개하자,임원은 "뭐 어려운 일 없느냐"고 물어왔다. 기회는 왔다. 김 대리는 "최근 다른 일을 맡았는데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적임자가 누구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김 대리는 빈대 3총사의 이름을 또박또박 댔다. "셋에게 일을 맡기면 빈틈 없이 잘 하곤 했다"는 칭찬과 함께.김 대리는 "요즘 젊은 직원들은 자존심이 대단해서 아무리 연장자라도 함부로 일을 시키거나,혼을 내기가 어렵다"며 "임원을 통해 간접 지시를 내렸더니 군말 않고 일을 해 가끔씩 이 방법을 활용하곤 한다"고 귀띔했다.

◆고수인 얌체상사 '맞춤 퇴치법'

무임승차하는 상사에 대처하는 건 여간 어렵지 않다. 사내 정치판에서 한 수 위인 상사에 잘못 보였다간 해를 입어서다. 무임승차 상사에게 해볼 만한 전략은 '평화협정'.무능한 상사라도 한껏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다. 대기업 계열 상사에 다니는 임모 과장(35)은 "상사가 내 실적에 묻어가려고 할 때 그냥 참고 좋게 넘어간다"며 "상사도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한테 의지하면서 인사고과를 잘 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게 없다면 경고를 내려 줄 호랑이를 찾는 게 순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성모 차장(38)은 전에 모시던 상사가 일을 못하면서 부하들을 괴롭히기만 해 작심하고 임원에게 낱낱이 고해 바친 적이 있다. 이후 상사는 부하들의 실적을 인정하는 등 태도가 한껏 누그러졌다. 성 차장은 "임원이 상사에게 경고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고 전했다.

무임승차하려는 상사를 '우회'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매번 부딪쳐 마음고생을 하느니,차라리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상사로부터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는 방법이다. 금융회사의 김모 과장(39)은 "다만 직속상사가 무임승차형일 경우 다른 상사와의 관계에서 줄타기를 잘해야만 마음고생을 덜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관우/이정호/김동윤/이상은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