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단추를 잘 끼우라'는 속담이 있다. 첫 결정이 중요한 IT산업에 더없이 적절한 말이다. 승자독식의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전환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스마트폰의 활성화와 함께 다시 불거진 액티브엑스에 관한 논란도 첫 단추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액티브엑스는 웹서비스 개발에 사용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소프트웨어 기술이다. 사용자가 서비스 제공자의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개발자의 입장에서 복잡한 기능을 구현하기가 용이하고,또 사용자의 컴퓨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버의 부하를 줄여준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전자정부 서비스,공인인증서를 이용한 금융 및 전자상거래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우리 전자정부는 최근 유엔 전자정부 평가에서 1위를 했고 국내 전자상거래 규모는 2001년 100조원에서 2008년 630조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액티브엑스는 악성코드를 다운 받을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본질적인 보안 취약성 때문에 웹표준에서 제외됐고 MS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특정 회사의 브라우저 시장점유율이 98%라는 기형적 현상은 액티브엑스에 기반한 웹환경 때문이다. 특히 전자상거래의 공인인증서비스가 액티브엑스를 기반으로 구현된 것도 크게 일조했다. MS의 정책사안이 국가적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의 웹서비스 성장에 도움을 준 액티브엑스가 이제는 우리를 우물안 개구리로 만들고 있다. 액티브엑스에 기반한 국내의 다양한 웹서비스들은 오직 국내용이다. '알렉사.com'에 의하면 1999년 세계 100대 웹사이트에 한국의 웹이 4곳 포함됐지만 2010년에는 한 곳도 없다. 세계 1위의 전자정부 서비스들은 내국인에게는 편리하지만 인기가 높아가고 있는 스마트폰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액티브엑스는 국내 전자상거래의 국제화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마존.com'은 세계 제1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다. 미국의 회사이지만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고 유럽의 많은 웹사이트들도 국제화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국내 특산품을 외국인에게 온라인으로 팔기는 불가능하다. 언어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공인인증서 규제와 액티브엑스는 외국인에게 질 좋은 우리의 상품을 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액티브엑스는 최근 정부가 표방한 모바일 인터넷의 활성화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금융결제원의 가이드라인은 스마트폰 결제에서도 액티브엑스를 이용한 공인인증서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액티브엑스를 지원하지 않는 아이폰 등의 스마트폰은 반쪽짜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액티브엑스의 문제는 방통위,금융감독원,금융결제원,인터넷진흥원,보안업체,전자상거래업체,금융권 등의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얽혀 있어서 쉽게 해결하기 힘든 사항이다. 또 현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사회적 전환비용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전환비용이 커진다는 점과 위에서 언급한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1970년대 일본은 세계 최초로 뮤즈라는 아날로그 방식의 HDTV를 1조5000억원을 들여 개발했지만 사장됐다. 세계가 디지털 기반의 HDTV 기술을 표준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2세대 이동통신은 일본 독자 방식으로 인해 국내용으로 전락했다. 반면 우리는 세계표준이 된 CDMA방식의 선택으로 이동통신 강국으로 도약했다. 이를 기반으로 휴대폰 세계시장을 거머쥐었다. 표준이 중요한 이유이다.

표준에서 제외된 액티브엑스의 문제는 세계와 소통할 것인가 아니면 문을 닫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비록 많은 비용을 투자했지만 버릴 거면 빠를수록 이익이다. 단추 잘 못 끼우고 밖에 나가서 폼 잡을 수는 없지 않은가.

모정훈 <연세대 교수·산업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