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가 스마트폰 열풍이 촉발한 '낸드플래시 잔치'에 주빈으로 초대받지 못하고 있다.


애플을 비롯한 스마트폰 메이커들이 한국산 낸드플래시 대신 도시바 제품 채용 비중을 늘리면서 시장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애플 아이팟을 필두로 전 세계에 모바일 디지털 바람이 불었던 4~5년 전 한국 업체들이 공격적인 낸드플래시 투자로 짭짤한 재미를 봤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이 다시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 낸드플래시 전성시대 열었지만…

낸드플래시는 1990년대 삼성전자가 글로벌 종합전자업체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효자상품이다. 1998년 도시바는 삼성에 플래시메모리 기술을 제공할 테니 생산라인을 합작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하지만 삼성은 이를 뿌리쳤다. 단독 투자 리스크를 안아야 하는 모험이었지만 도시바와의 합작으로는 1위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삼성전자는 D램으로 번 자금을 모조리 쏟아부었고 2001년부터 이 시장 1위에 올랐다. 이후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의 상징과 같은 제품이 됐다.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한때 60%에 육박했다. 하이닉스도 2007년 17%까지 시장점유율을 높이며 2위 도시바를 바짝 추격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디지털카메라나 MP3플레이어에 들어가는 범용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맹활약을 했다. 도시바에 비해 한발 앞선 공정기술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선 참패

상황이 달라진 것은 스마트폰 등 프리미엄급 모바일 기기들이 잇달아 등장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다. 정보 처리 역할을 하는 낸드플래시의 속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세트 업체들이 읽기,쓰기 속도가 빠른 도시바 제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두 배에 달했던 삼성전자와 도시바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지난해 4분기 1%대로 좁혀졌다. 8~32GB 용량의 낸드플래시가 내장 메모리 형태로 들어가는 애플 아이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은 주로 도시바 메모리를 쓴다.

업계는 안드로이드폰이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올해 하반기부터 도시바 쏠림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9억1200만달러였던 스마트폰 시장은 올해 22억2700만달러,내년 34억100만달러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더 높은 품질의 낸드플래시를 요구할 경우 시장의 무게중심이 도시바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독주체제 종료되나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낸드플래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D램이 많이 필요한 PC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는 반면 낸드플래시가 중심인 휴대용 모바일 기기 시장은 갈수록 성장 속도를 높여가고 있다.

2005년 D램 시장의 규모는 251억1500만달러로 107억1200만달러에 그친 낸드플래시의 2.5배에 달했다. 이 격차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낸드플래시 시장 규모(136억2300만달러)는 D램(211억9300만달러)의 70% 수준까지 근접했다. 올해 낸드플래시 시장 성장률은 32%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D램 시장(20%)을 압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2014~2015년께 낸드플래시 시장이 D램 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일본의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은 D램 대신 낸드플래시 분야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라며 "섣불리 대응하다간 한국의 독주체제가 일찌감치 마감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