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장사를 하던 시절,필자는 여느 직장인처럼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여러 번 사업에 실패한 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앞에서 리어카를 하나 끌고 '꿀떡개비'란 이름으로 호떡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복장이 독특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필자에겐 나름의 철학이 담긴 고집의 표현이었다.

정장을 입고 노점상을 한다는 것은 '난 소중한 존재'라는 존엄성을 표현한 것이었다. 모름지기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언행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정갈한 옷을 입고 있을 때와 대충 편한 옷을 입었을 때 우리의 행동은 옷에 영향을 받게 된다. 필자 역시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두꺼운 점퍼 차림이 당장 따뜻하고 편할지는 몰라도 손님들이 나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부도난 회사 사장'이란 바닥에 떨어져버린 필자의 존엄성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나름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사실,정장을 입고 장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옷에 기름이 튈까봐 계속 신경을 써야 하고,한겨울에는 얇은 와이셔츠를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과 발끝이 시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조여오는 추위를 온 몸으로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단순히 호떡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호떡을 팔면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해 정장을 입고 발버둥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남으로부터 평가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냥 '나'가 아닌,다른 사람이 바라보고 평가해주는 '나'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려 한다. 하지만 본질은 언제나 형식을 초월한다. 진주는 흙바닥에 있든 귀부인의 목에 있든 진주가 아니겠는가. 남들이 볼 땐 호떡 파는 노점상 아저씨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나는 스스로 '외식사업가'라고 생각하고 조그만 손수레를 사업장이라 여겼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극복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에 대해서나 회사에 대해서나 스스로 성장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식견을 갖게 된다. 자기 암시와 같은 이러한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실패 앞에서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이 하는 일이 '돈'을 넘어 '행복'을 가져다준다. 세상에 가치 없는 사람이 없듯,의미 없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러 번의 실패 경험들을 통해 일하는 자부심과 본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것이 바로 '본'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김철호 본죽 대표 hope21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