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분위기가 들썩인다. 그들이 들어왔다. 한동안 구경 못 하던 신입사원이다. 김 과장,이 대리들이 드러내 놓고 반색한다. 일손 하나 늘리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요즘이다. 막내 이 대리는 벌써 입이 귀에 걸렸다. 삼겹살 회식의 '불판담당' 딱지를 뗄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기쁨조'용 노래방 탬버린도 이젠 내려놓을 순서다. 게다가 팀비 관리,워크숍 준비 등 팀 잡무에서도 해방이다. 이 대리는 "싹수만 있어다오,내 모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주련다"며 신입에 대한 애정공세를 다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불안감이 엄습한다. 달라진 세상 때문이다. 능력 좋으면 상하관계가 대수인가. 후배가 팀장되고,연봉 추월하는 '전세 역전'은 화젯거리도 아닌 게 요즘이다. 내 짐 덜어줄 귀여운 후배가 아닌,또 다른 경쟁자의 출현이란 얘기다. 신입들의 스펙이 완벽하면 걱정은 더 커진다. 까딱하다간 내 자리가 위태롭다. 요즘 김 과장,이 대리들은 기대도 고민도 늘었다. "후배를 키울까? 뭉갤까?"

◆화려한 스펙,'슈퍼루키' 천지

신입사원,뭔가 다르다. 수백,수천대 1의 취업 경쟁률을 뚫었다더니 스펙부터 기가 질린다. 토익 만점은 기본이고,중국어 일본어 등 제2외국어도 능통.프로 뺨치는 오피스 작성 실력에 대기업 인턴 경력까지 갖춘 이른바 '슈퍼루키' 천지다. "나 같으면 요즘 취업을 못 했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요즘 이런 것도 가르치나' 싶을 만큼 문서 작성능력이 탁월하다는 게 공통적이다. 파워포인트가 대표적이다.

국내 중견 제약회사의 김성도 과장(37)은 상부에 보고 거리가 있으면 석달 전 입사한 신입사원을 찾는다. 신입의 파워포인트 작성 능력은 10년차인 김 과장이 포함된 네 명의 팀원 중 최고 수준이다. 만들기만 하면 문서 전체가 확 살아난다. 게다가 영어 프레젠테이션까지 척척 해낸다. 사장은 아예 신입을 데리고 전 부서를 돌며 "너희보다 몸값이 두 배는 되는 친구야,선배도 후배한테 배울 자세가 돼 있어야 해!"라며 신입 자랑에 신이 났다. 김 과장은 "출중한 신입에게 쏠린 회사의 관심이 부러운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저런 친구는 오래 붙어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고 털어놨다.

기초 스펙의 차이만큼이나 세대차이도 크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정수진 대리(28)는 요즘 신입 후배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회식 때 그가 청국장과 감자탕을 주문하면 신입은 '식사를 따로 하겠다'며 자리를 뜬다. 특히 광고 모델회의에선 후보 의견이 일치한 적이 없다. 그는 "내가 비를 꼽으면 신입사원은 2PM의 택연을,내가 이효리를 꼽으면 신입사원은 애프터스쿨의 유이를 고른다"며 "요즘 세대차이는 1년 단위로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겹살을 제가 구우라고요?"

능력 있고 살가운 신입사원만 들어오면 오죽 좋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집단 개념이 약한 특성 탓인지 먼저 몸을 낮출 줄 모른다고 김 과장,이 대리는 불평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강모 대리(28)는 작년 초 새로 들어온 신입 때문에 속을 끓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 후배 김모씨(24)는 얼굴이 예뻤다. 성격도 사근사근했다. 술까지 잘 마셨다. 상사들은 그녀를 오냐오냐 하며 예뻐했다.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수저 놓기,물 따르기,삼겹살 뒤집기까지 전부 강 대리의 몫으로 그냥 남았다.

소심한 강 대리는 '밴댕이 선배' 소리를 들을까 노심초사하다 어느 날 용기를 냈다. "◆◆씨도 나중에 후배 받았을 때 회식 자리에서 자기가 삼겹살 뒤집고 있으면 열받지 않겠어? 다음엔 신경좀 써 줘"라고 나름 곱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 회식에서 보기 좋게 어퍼컷을 맞았다. 신입은 활짝 웃으며 "부장님,강 대리님이 삼겹살 뒤집는 거 기분 나쁘다고 하셔서 오늘은 제가 하기로 했어요"라고 외친 것이다.

'고공 플레이'에 능한 신입도 경계대상이다. 툭하면 사내제안을 핑계로 불만을 윗선에 직보하기 일쑤다. 중견 유통업체에 다니는 김상현 과장(35)은 몇 년 전 신입 이모씨(29)에게 딱 한 잔 원샷폭탄을 권했다. 만취한 신입을 집까지 잘 바래다 준 뒤 다음 날 지각한 그를 혼냈다. 성실과 의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 흔히 있는 패턴이었기에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며칠 뒤 사장이 그를 불렀다. "술을 싫다는데도 그렇게 먹였다면서?"로 시작한 사장의 잔소리는 "그 신입이 자네보다 더 중한 인재가 될지도 모르는데 술때문에 그만두면 책임질 거야?"라는 자존심 긁기로 끝났다. 이씨는 사장의 친구 아들이었다.

◆'내사람 만들기' 노하우도 진화

김 과장,이 대리도 신입만큼이나 진화한다. "회삿밥을 코로 먹었겠느냐"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아무리 출중한 신세대라 해도 새 환경 적응에는 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화장품 업체에 다니는 김인희 대리(32)는 '딱 한 놈만 잡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가장 능력이 처지는 후배가 '제휴' 타깃이다. 김 대리는 "좀 떨어지는 후배를 골라 아쉬울 때 집중적으로 케어해주면 만족도가 큰 만큼 충성도도 크다"며 "사내평판 관리도 그 후배들이 나서서 해주곤 한다"고 귀띔했다.

요즘엔 사람만들기 작업도 조직화(?)됐다. 직장생활 4년차인 안모씨(30)는 작년 초 신입 여직원과 벌였던 '기싸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대기업 인턴 출신인 김모씨(25)는 남직원들의 '빽'을 믿고 은근히 여자 선배들을 깔보는 언동을 일삼았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인턴때 배운 내용이라며 선배를 가르치려 하질 않나,도통 위아래가 없는 '괘씸녀'였다.

사수인 안씨가 총대를 멨다. 근태가 철저하지 못했던 김씨보다 10분 먼저 출근하고,10분 늦게 퇴근했다. "신입이 선배보다 늦게 나오느냐"고 매일 지적했다. 반면 술자리에선 '알고 보면 이 친구가 숨겨진 주당'이라며 잔을 계속 몰아줬다. 한 달여가 지나자 김씨는 안씨에게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때가 됐다'고 판단한 안씨도 전략을 바꿨다. 김씨가 지각할 때 한두 번 눈감아 준 것이 신호였다. 김씨는 그때부터 태도를 바꿨다. 어느 날 여직원 모임에 참여한 그는 "제가 총무할게요"라며 막내 역할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선배의 권위를 깨닫게 하라

신입사원을 순치시키는 확실한 방법으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게 질문 공세다. 중견 조선회사의 박승진 과장(35)은 "우리 회사 영업 지점이 총 몇 개인 줄 알아?" "우리 회사 주력 브랜드 매출이 얼마인 줄 알지?" 등의 질문을 신입에게 매번 던진다. 그러면 신입사원은 회의나 대화시마다 '오늘은 어떤 질문을 할까'라며 긴장할 수밖에 없다.

술자리에선 폭탄주의 '양주 비율'이 높아지고,회의 시에는 발표가 맡겨지거나 까다로운 질문 공세가 쏟아진다. 그는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제 아무리 당돌한 신입사원도 현업 부서에 배치될 무렵이면 '온순한 양'으로 길들여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관우/이정호/김동윤/정인설/이상은/이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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