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변하지 않아도 라스베이거스는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10일(현지시간) 폐막하는 세계적 전자제품 전시회 CES에 참가한 한 기업인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산업지도가 가장 빠르게 변하는 글로벌 전자업계의 새해 첫 전시회를 여는 이 도시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주는 말이었다.

전자업계의 급변에 대해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작년 금융위기로 올해 몇몇 업체들은 전시회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혁신에 실패,작년 장사를 제대로 못한 회사들은 전시규모를 줄이거나 참가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는다는 얘기다. 실제 '전자왕국 일본'을 이끌었던 소니는 작년 막대한 적자를 내며 전시장 규모를 상당히 줄이는 고통을 감내했고 파나소닉,도시바 등 다른 일본 기업들도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로 무대에 선 듯한 모습이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긍정적 변화의 주인공이었다. 세계 전자업체들 중 가장 큰 규모의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삼성전자 전시장은 기자들과 고객들로 거의 매일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금융위기 속에 약진한 LG전자 부스도 고객들로 북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주목되는 건 중국업체들이었다. 작년만 해도 한 구석에서 보이지 않게 전시장을 차렸던 TCL,하이얼,하이센스 등은 올해 전시장 규모를 대폭 넓혔다. 삼성전자의 동쪽,서쪽,남쪽에 각각 큼지막한 부스를 차지해 마치 삼성을 포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위압적이기까지 했다.

참가 기업들뿐 아니라 전시품목의 변화 속도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9월 중순 독일에서 열린 가전 전시회에 3차원(3D) 입체TV를 전시한 업체는 극소수였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는 거의 모든 업체들이 3D TV를 주력품목으로 전시하며 대규모 전쟁을 예고했다. 액세서리 정도에 그칠 줄 알았던 전자책(e-북)도 이번 전시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폐막일까지도 지구촌의 수많은 IT 전문가와 일반 관람객들로 붐빈 CES 행사장을 지켜보며 '변화무쌍'이라는 화두를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뒤 다시 이곳을 찾을 때도 삼성전자 ·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세계 전자산업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 서 있기를 바라면서 라스베이거스를 떠난다.

김용준 美라스베이거스=산업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