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의 발전 속도를 보면 눈이 핑핑 돌아간다. 이런저런 기능을 수십개씩 갖추는 건 보통이고 기존 제품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개선돼 나온다. 사용법을 음성으로 안내하는 제품까지 개발돼 중 · 노년층도 뭔소린지 잘 모르는 설명서를 붙들고 씨름할 필요가 없게 됐다.

압력밥솥만 해도 전원을 켜면 '손잡이를 압력으로 돌려주세요''누룽지를 선택해주세요'등 작동 요령 200여가지를 말로 알려준다. 손이 잘 닿지 않는 압력노즐,밸브 등을 스팀으로 자동 청소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로봇청소기도 장애물을 피해가며 구석구석 청소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된 데다 계단 현관 등 추락 우려가 있는 곳에서 스스로 방향을 바꾼다. TV나 홈 시어터 역시 인공지능이 가미돼 더 똑똑해졌다.

조명이 강해 화면이 흐릿하게 보이면 명암비와 색농도를 알아서 높여주는 것은 물론 '음장 최적화'를 통해 스피커와 청취자 거리를 자동으로 파악해 소리를 조절해 준다. 청취자가 왼쪽에 치우쳐 있으면 왼쪽 소리를 스스로 낮추고 뒤쪽에 있으면 뒤쪽 스피커 음량을 줄이는 식이다. 한두 가지 프로그램된 기능만 실행하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맞춰 작동하는 이른바 '스마트(Smart · 똑똑한)' 제품들이다.

오는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가전제품 박람회(CES 2010)의 핵심 트렌드도 '스마트'로 요약된다. 컴퓨터 부문에선 노트북과 휴대폰의 중간쯤 크기에 무선통신기능을 갖춘 '스마트 북'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한다. 키보드나 마우스 대신 화면에 글씨를 써 입력하는 '태블릿PC'도 쏟아질 전망이다.

휴대폰과 신용카드가 통합된 '스마트 카드'도 개발됐다. 휴대폰에 신용카드와 멤버십 카드 정보를 넣어 카드기능과 함께 각종 생활 · 금융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다음 스마트 카드를 판독기에 대면 사용자가 가입한 카드 중 가장 할인폭이 큰 것을 자동으로 골라 결제하고 마일리지까지 적립한다. 할인 혜택이 있는 커피점,음식점 등을 안내하는 지도와 함께 할인 쿠폰까지 전송하는 영리한 카드다.

수천권 분량의 책 내용을 무선 인터넷으로 내려받는 전자책도 밑줄 긋기와 메모,북마크가 가능한 것은 물론 내용에 따라 사진과 음향을 함께 내보낼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터미네이터의 눈'과 비슷하게 스마트폰을 통해 현실세계에 부가 정보를 더해 영상으로 보여주는 '증강현실'도 상용화 단계다. 기존 전력망에 정보기술을 접목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성장과 녹색이 적절하게 조화된 '스마트 시티'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가장 자주 쓰일 단어로 '스마트'를 꼽았다. 금융위기 이후 '똑똑한' 제품들이 대거 개발돼 나오는데 적응하려면 경제활동 참가자들도 보다 영리해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흐름을 감안해 오바마 정부는 '스마트 파워'시대를 선언하기도 했다.

1998년 자신의 몸 안에 실리콘 칩을 이식해 '사이보그 되기'를 실험했던 인공두뇌학자 케빈 워릭은 '무한히 확장된 인간'이란 개념을 내놨다. 이제 '스마트 파워'를 통해 그 개념이 실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실현되는 중이다. 많건 적건 누구나 스마트 파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엄청난 '사업 기회'가 잠재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