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의 상징 복권.당첨되는 순간을 상상하면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당첨의 행운을 안고서도 돈을 한푼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인쇄가 잘못됐거나 지급날짜가 지나면 당첨은 꽝이 된다. 절친한 친구가 철천지 원수로 변하기도 한다. 같이 나누기로 약속했다가 한 사람이 독식하는 바람에 벌어지는 일이다. 남의 복권을 훔친 사람이나 존속살해범에게도 당첨의 행운은 찾아온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말로는 그리 좋지 않다.

◆구두약속 · 묵시적 합의도 지켜야

A씨는 2007년 4월 사무실에서 B씨 등 6명과 포커를 치다가 판돈을 떼어내 로또복권 14장을 구입해 2장씩 나눠 가졌다. 당시 "당첨자는 당첨금의 절반을,6명은 나머지 절반을 나눠 갖는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A씨는 로또복권이 1등(당첨금 52억원)에 당첨되자 이를 숨긴 채 몰래 당첨금을 찾아갔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친구들이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복권 구입대금이 불법적인 도박자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당첨금 분배에 대한 약정까지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구두로 맺어진 약속도 구속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K씨는 단골 다방에서 종업원을 시켜 즉석식을 사오게 했다. 2장만 사려다가 다방 종업원 3명이 같이 긁어보자고 제안해 사람숫자대로 4장을 샀다. 이 중 두 장이 각각 2000만원에 당첨돼 4000만원의 공짜돈이 생겼다. K씨는 독식하려 했지만 법원은 "당첨금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종업원 손을 들어줬다.

B씨는 2006년 9월 즉석식복권(스피또 2000) 5장을 샀다. 그 중 1장이 10억원짜리에 당첨됐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복권사업단에 달려가 지급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업단은 "인쇄가 잘못된 복권"이라며 지급을 거절했다. 법원도 "복권에 기재된 검증번호와 복권사업단이 보유한 검증번호가 일치하지 않는 만큼 당첨금 지급 청구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L씨는 2002년 즉석식 복권 지급기한일 밤 7시30분에 복권을 사서 당첨됐다. 하지만 은행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은행으로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은행은 "기일이 지났다"며 당첨금을 주지 않았다. 대법원은 "복권판매상이 판매종료시점 이후에 임의로 판매한 잘못이 인정되지만 지급기한 내 은행에 지급 청구를 못했기 때문에 은행이 당첨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돈을 벌기 위해 사실혼 4년 만에 따로 살아야 했던 C씨 부부는 2005년 11월 남편 C씨가 로또 1등에 당첨되면서 고생이 끝나는 듯했다. 당시 남편이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아 당첨금 18억8000만원이 아내 K씨 계좌에 입금됐다. 그런데 남편이 어머니에게 부칠 돈 5000만원을 송금하라고 요청하자 아내 K씨는 당첨금 가운데 12억원을 자신의 몫으로 요구했다. 2심 재판부는 "아내에게 한푼도 줄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당첨금 주인은 로또를 산 C씨이며,당첨금을 부인에게 맡겼어도 증여의 뜻이 아니었다고 봤다.

◆범법자에게 찾아온 행운의 끝은?

K씨는 2004년 7월 초 집에서 빈둥대던 자신을 나무라던 어머니를 살해한 뒤 방안에 방치했다. 한 달 정도 뒤 술에 취해 길에서 잠자던 사람의 지갑을 훔쳤다. 그런데 그 지갑 속에 들어있던 로또복권이 1등에 당첨돼 21억원을 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어머니를 살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남아 있던 로또 당첨금도 원소유주에게 돌려 줘야 했다.

전과 22범의 H씨는 2005년 3월 마산시의 한 PC방에서 종업원을 폭행한 뒤 20여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넉 달 뒤 그는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됐다. 당첨 금액은 19억원.세금을 제하고도 14억원이 남았다. 그는 다음해 3월 절도죄로 경찰에 붙잡혔지만 당첨금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가볍게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도벽이 발동해 다시 절도를 시작했고,철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