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은 지금 홍색(紅色)의 도시로 변했다. 대로변에는 붉은 등이 줄줄이 달렸다. '개혁 · 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의 위대한 승리'라는 붉은 플래카드도 도처에 널렸다. 서점에는 붉은 글자의 혁명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진열장을 점령했다. 자극적인 붉은색 뒤엔 또 다른 베이징이 있다. 지난달부터 6500여명이 구금됐다. 우범지역의 상가는 문을 닫았다. 시내엔 '완장 반,시민 반'이다. 공안(경찰)과 순찰이란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행인들을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 내달 1일 건국 60주년을 맞는 중국은 이처럼 축제를 여는 사람과 축제를 감시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강성대국 중국과 통제 · 감시의 중국이 혼재해 있는 모습.이것이 공산정권 60년의 중국이다.

◆대내외에 공산당의 중화부흥 과시

건국 60주년 기념식은 중국 공산당으로선 대내외적으로 존재 의미를 확인시키는 행사다. 서방의 수탈로 대제국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은 중국민들에게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마오쩌둥이 혁명을 완수한 뒤 한국전쟁에 참전,미국 등 서방과 대결하고 곧바로 초영간미(超英走干 美:영국을 추월하고 미국을 따라잡음)를 국정 목표로 제시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깔려있다.

마오쩌둥이 톈안먼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선포했던 1949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679억위안에 불과했다. 작년 말 현재는 30조670억위안으로 당시보다 442배 늘었다. 연간 무역액은 11억달러에서 2조5616억달러로 2328배 증가했다. 2조2000억달러가 넘는 외환을 보유,세계에서 외국돈이 가장 많은 나라도 중국이다.

게다가 작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힘은 더욱 돋보이고 있다. 미국조차 중국에 국채를 사달라며 머리를 숙였고,중국은 유럽 등에 구매사절단을 보내며 고개를 쳐들었다. 2007년엔 아프리카대륙의 국가원수 50여명이 한꺼번에 베이징에 찾아와 채무를 탕감받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을 변방의 골목대장이 아니라 중심국의 수장으로 만들었다.

◆화려함 속에 깃들인 외강내유의 위기

중국의 발전은 분명 경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발전의 그림자도 그만큼 짙다. 작년 말 현재 도시민의 연평균 소득은 1만5781위안이다. 농촌의 평균 소득인 4760위안보다 세 배 이상 많다. 7억 농민은 이처럼 경제발전에서 소외돼 있다. 도 · 농 간 격차뿐 아니라 동부연안과 중서부지역 간,한족과 소수민족 간 갈등도 심하다. 공산정권 60년은 개혁 · 개방 이전과 이후의 시기로 나뉜다. 가난한 평등의 시기였던 마오쩌둥의 시대와 부유한 불평등의 시대인 개혁 · 개방 이후의 경계는 분명히 나타난다. 경제발전과 발맞춰 신좌파가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이에 따라 통제의 칼을 거두지 않고 있다. 최근엔 택배법을 개정,50g 이하의 물건은 우체국을 통해서만 배달할 수 있도록 했다. 불온문서가 민간배달업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밖으로는 중국의 파워가 더욱 강해지고 있지만,안으로는 갈등도 고조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올해 잇따라 터진 신장과 시짱의 소수민족 유혈시위나 각 지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고 있는 집단시위가 이를 방증한다.

◆중국 위협하는 부패와 비민주

중국 공산정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톈안먼사건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89년 중국의 대학생들은 톈안먼에서 부패관리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정부가 탱크로 진압하자 민주화시위로 발전했다. 톈안먼사태는 중국 공산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비민주와 부패라는 두 가지 핵심 문제를 건드린 셈이다.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지만 부패관리로 인한 시위가 사실 끊이지 않는다. 상팡런(上訪人)이라 불리는 민원인들이 '나라님'께 직접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겠다며 베이징에 집단 거주하고 있을 정도다. 작년 중국 지식인 303인이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공산당의 나라'라며 중국을 통렬히 비판한 08헌장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기도 했다. 올 초엔 원로들이 당내 민주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공개해 파장이 일었다.

반부패를 건국 60주년을 앞둔 4중전회의 아젠다로 채택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공산당 영도라는 중국헌법의 전문이 존재하는 이상 민주적 개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부패 역시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게 건국 60주년을 맞이한 중국 공산당의 딜레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