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의 A부장검사는 지방 근무 시절 해당 지역 군수를 뇌물 혐의로 구속했다가 하마터면 그냥 풀어줄 뻔했다. 군수를 대리해 뇌물을 받은 부하 직원을 검찰 조사실에 데려다 변호사 입회 아래 영상녹화하면서 진술을 들었는데 막상 직원이 법정에서는 "그런 진술을 한 적 없다"고 잡아뗀 것이다. A부장검사는 영상녹화 자료를 제출하려 했지만 재판부는 거절했다. A부장검사는 "다른 증거를 보강해 결국 유죄를 받아내긴 했지만 자칫 범인을 놓아줄 뻔했다"고 말했다.

검찰이나 변호인 측이 재판 자료로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법원이 이를 증거나 참고자료로 채택하기를 꺼려 논란이 일고 있다.

UCC 동영상의 대표적인 예는 피의자의 검찰 조사실 진술 장면을 영상녹화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약 20만명의 검찰 조사 대상자 가운데 2만7769명이 영상조사를 받은 데 이어 올해는 7월까지만 4만74명이 카메라 앞에 앉아 진술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7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영상녹화 자료는 정식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형사소송법 312조2항에서는 피의자가 검찰이 작성한 조서의 내용에 대해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부인(성립의 진정을 부인)하는 경우에 조서 내용과 실제 진술이 같음을 증명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 사용토록 하고 있다. A부장검사 경우처럼 보조 자료로도 채택되지 않은 경우도 눈에 띈다. 기껏 찍어 놓고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는 셈이다.

변호인 측이 제시하는 UCC 동영상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1일 서울고등법원의 한 법정에서는 성폭행 피의자를 변론하는 변호사가 범행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틀었다. 해당 변호사는 거친 표면의 계단이 찍힌 이 영상을 통해 "범인의 키가 여자보다 작아 범인이 업고서 계단을 올라 갔다면 여자의 발에 상처가 났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며 피의자의 성폭행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CCTV 영상 등 직접적인 증거가 아닌 이 같은 UCC 동영상을 법정에서 상영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법원과 변호사 업계의 설명이다. 서울의 한 지법 판사는 "변호사들이 UCC 동영상을 제출하려고 하면 판사들이 대부분 '그냥 사진으로 내라'고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사진이나 문서보다 생생하고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UCC 동영상을 증거 및 참고자료로 적극 채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검찰은 특히 피의자 진술 영상녹화 자료를 직접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성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검사는 "판사들이 동영상 재생을 귀찮아하거나 '회유나 협박 후 촬영했을 수 있다' '장시간 재생으로 인해 재판이 지연된다'는 등의 이유로 채택하지 않으려 한다"며 "그러나 조서의 경우에도 회유나 협박의 의심이 있을 수 있고 오히려 동영상에서의 피의자 태도 등을 통해 그런 사실을 검증할 수 있으며 번복한 진술에 대해서만 동영상을 재생하면 지연 우려도 적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