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정해 봅시다. 당신이 최고경영자(CEO)입니다. 당신네 회사에서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대박 터뜨리면 발딱 일어설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동안 모든 걸 비밀에 부친 채 연구개발을 진행했습니다.

이제 제품 출시가 반 년 남았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속 비밀에 부쳤다가 꽈앙~ 터뜨리겠습니까? 조금씩 흘려서 입소문을 내시겠습니까?

오늘은 애플의 경우를 살펴볼까 합니다. 요즘 애플 아이폰이 언제 나오느냐를 놓고 말이 많습니다. 본격적으로 소문이 나돈 지 두세 달은 된 것 같습니다. KT가 7월에 낸다더라,신모델인 아이폰 3GS는 안 내고 구 모델인 3G를 낸다더라,무선인터넷(WiFi) 기능은 뺀다더라,광고 시안까지 만들었다더라….별의별 얘기가 다 나왔습니다. 7월 출시설은 이미 '떡밥'으로 판명 났습니다. 그래도 소문은 끝이 없습니다.

소문이 퍼지는 동안 논란도 많았습니다. 일부 '애플빠'들이 헛소문을 퍼뜨린다는 비난도 나왔고,'애플빠'들의 행태는 '사대주의'가 아니고 뭐냐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한심한 기자'라느니 'IT 기자는 아무나 하는가'라는 힐난이 쏟아졌죠.공방전이 계속되는 동안 애플코리아는 "제품이 나오기 전에는 일절 대꾸하지 않는다는 게 본사 방침"이라며 철저히 "노 코멘트"로 일관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며칠 전부터 커다란 '떡밥'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거론됐던 '아이태블릿'('애플 넷북' 또는 '아이팟터치 HD')에 관한 소문입니다. 쉽게 말해 애플이 '초대형 아이팟터치'를 내놓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체적입니다. 화면 크기는 10인치이고,3세대 이동통신망과 무선인터넷 접속 기능을 갖췄다는 게 요지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크리스마스 성수기 직전인 9월쯤 내놓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아이태블릿 소문이 왜 '커다란 떡밥'일까요? 사실일 경우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이팟터치가 10인치 크기로 나온다면 넷북 시장이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이팟터치는 터치 기능에서는 '짱'입니다. 아이튠즈를 통해 무수히 많은 콘텐츠 ·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 있는 것도 강점이죠.이게 나온다면 넷북은 물론 아마존 전자책 단말기 '킨들'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사실 애플의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은 유명합니다. 애플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기 1년쯤 전부터 이러쿵저러쿵 입소문이 나게 조장해 놓고 '노 코멘트'로 일관합니다.

소비자로서는 소문의 진원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믿기도 그렇고 무시하기도 그렇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가 임박할수록 소문은 조금씩 구체화됩니다. 그러니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기 전에 엄청나게 홍보가 되는 것이지요.

애플의 이런 마케팅에 대해 "애플이니까 가능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플은 최근 수년 동안 아이팟 아이튠즈 아이폰 맥에어 등 혁신적인 제품을 잇따라 내놓았습니다.

이에 따라 소비자 기대심리도 커졌습니다. 그동안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면 소비자들은 애플이 어떤 신제품을 준비하든 관심을 갖지 않겠죠.아무튼 애플로서는 돈 안 들이고 엄청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이런 걸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애플 신제품 개발에 관한 소식은 잡히기만 하면 앞다퉈 씁니다. 그런 기사를 원하는 독자가 있기 때문이겠죠.특히 맥루머스(www.macrumors.com)를 비롯한 온라인 미디어가 적극적입니다. 이런 기사에 대해 미국 소비자들은 '떡밥'이라고 비난하진 않습니다.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름대로 판단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이런 식의 마케팅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떡밥'이니 아니니 하며 논쟁을 벌이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쟁이야말로 애플이 노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근거 없이 소문을 퍼뜨려서도 안 되겠지만 소문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은 아이폰 출시와 관련해 한국에서 아직 단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애플 CEO라면 기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