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녀 성공의 3대 요소는 자녀의 체력,부모의 정보력,그리고 조부모의 경제력이란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사교육을 감당하기 위한 본인의 체력을 토대로,웬만한 입시학원 부럽지 않은 부모의 정보력에,손자 녀석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지원을 아끼지 않는 조부모의 경제력이 더해지면 100전100승이라는 게다.

그런 까닭인지 요즘 미혼 남성의 배우자 선택 조건에는 '처가의 경제력'이 슬며시 포함되고 있다 한다. 예전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던 세대의 눈엔 요즘 젊은 세대의 당당한 의존성이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제 아들딸에 손자 손녀까지 건사해야 하는 '캥거루 3대'가 등장했다는 소식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듯싶다.

올해부턴 한국에서도 전후(戰後) 다산(多産)의 시대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리라는데,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눈에 띈다.

1970,80년대 고도성장을 주도했던 근대화 세대는 대체로 계층 상승이동을 경험한 반면,베이비부머와 그의 자녀 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가 생활화되고 계층 간 불평등이 고착화됨에 따라,계층 상승보다 하강 이동의 가능성이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54년부터 1961년 사이에만 무려 567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던 시절의 베이비붐 세대 경험은 우리보다 앞서 베이비붐이 시작된 미국 사례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 1946년부터 1964년에 걸쳐 태어난 미국의 7600만 베이비 붐 세대는 수적으로 엄청난 다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예외적인 세대요,끊임없이 사회변동을 추동해온 엔진 역할을 담당해왔던 세대이기도 하다. 한데 자신의 부모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문화적으로 수준 높은 삶을 향유하리라 꿈꾸었던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은 1973~74년에 걸쳐 두 가지 예기치 않은 충격과 맞부딪치게 된다. 하나는 오일 쇼크요 다른 하나는 생산성 저하 쇼크로,이로 인해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실질 소득 및 구매력에서 부모 세대의 수준을 상회하지 못하는 좌절을 경험하고 만다.

1973년 베이비 붐 세대가 사회로 진출하면서 실질 임금 감소 현상이 시작돼,이들은 오히려 부모의 수입보다 10% 하강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내 집 마련,자녀들 대학공부,여유로운 소비생활'의 아메리칸 드림이 여지없이 무너져 가는 것을 경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베이비붐 세대도 동질적 집단은 아니어서 1955년 이전 출생한 베이비붐 전기 세대는 1950,60년대 미국 번영의 열매로부터 직접적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덕분에 '이상주의자'로 남은 반면,1955년 이후 출생한 베이비 붐 후기 세대는 구직에서부터 결혼시장을 거쳐 주택구입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경쟁을 벌여야 했고,스태그플레이션에 들어간 미국 경제의 최초 희생자가 돼야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징후가 감지되고 있음은 흥미롭다. 우리네 베이비 붐 세대가 40대 초반 및 30대 후반을 지나면서 맞부딪쳤던 1997년의 외환위기는,그 이전까지의 성장에 대한 신화가 심리적으로 종언을 구하는 사건이요,현실적으로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불안정성에 노출된 시기로 기억될 것이요,90% 이상이 중산층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중산층의 붕괴가 주는 부정적 영향 또한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여전히 부모 부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한편으로,자식 교육을 위해 올인한 까닭에 정작 자신의 노후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은퇴를 맞게 된 베이비 부머들,이들을 영원한 '샌드위치 세대'의 고뇌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사회정책적 차원의 대안이 시급한 시점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ㆍ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