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보다 '나'를 사랑하는 남자들- 초식남(草食男)

훤칠한 키에 누가 보아도 센스가 뛰어난 꽃미남이지만 연애나 결혼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를 일컬어 초식남이라고 한다.

이들은 기존의 남성상(육식남)과 달리 감수성이 뛰어나고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가장 중요시한다.

1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우리 주변의 초식남을 밀착취재하고 그들을 통해 급변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재조명해본다.

◆연애도 성(性)도 피곤해, 혼자가 재밌지

인터뷰를 진행한 초식남은 "여자 친구는 많지만 애인은 없어요. 괜히 상대방 기분을 맞춰야 하고 서로 상처를 주는 일은 너무 싫어요. 저도 바쁜데 시간도 들고 돈도 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헤어지든 결혼하든 평생 피곤해지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럴 바에야 혼자 취미생활하고 성별 따질 것 없이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요. 섹스? 저 같은 경우엔 성욕이 강하지 않은 편이에요. 남들이 혹시 게이 아니냐고 묻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담담히 말하는 회사원 이모(31)씨는 훤칠한 키에 누가 봐도 센스가 뛰어난 꽃미남이지만 연애나 결혼에 관심이 없다.

이런 남자들을 일컫는 신조어가 바로 '초식남(草食男)'이다.

◆'내 인생'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남자들

초식남이란 말은 일본의 한 칼럼니스트가 기존의 남성상(육식남)과 달리 감수성이 뛰어나고 자신의 취미활동에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을 지칭하면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가장 중요시한다.

감수성이 뛰어나고 자기에게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깔끔한 외모를 유지한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데다 공격적이지 않고 세심한 면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과 쉽게 친해지지만애인사이로 잘 발전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30대 미혼남성 74%가 스스로를 초식남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런 경향에 따라 초식남을 주제로 한 서적들이 쏟아지고 초식남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이런 초식남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매스미디어에서 자상한 꽃미남 스타일로 대변되는 캐릭터가 초식남의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자유롭게 개성을 발휘하는 20대들에게 초식남은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남성상이다.

스스로를 초식남으로 인정하는 김모(27)씨는 "연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것을 버려도 좋을 만큼의 인연, 혹은 내 사생활을 터치하지 않고 만나줄 마음 넓은 여자가 아니면 함부로 연애를 시도하지 않는 것뿐이죠"라고 말한다.

◆초식남, 그들이 등장한 이유는?

'초식남' 붐을 일으킨 우시쿠보 메구미씨는 이들의 등장 배경을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누군가를 이기고 무언가를 얻는 고도성장기의 혜택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로서 경쟁을 하기보다 자신의 가치를 평화롭게 기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개인을 희생하고 이를 통해 권위를 획득하는 전통적인 남성상을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중년층에게 초식남이란 유약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초식남들은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고, 조직 내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는 모두 꼼꼼히 처리하는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성세대 남성들이 개인의 가치를 잃고 소외되는 현상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일본과 다른 문화적 환경을 가진 한국에 초식남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40대 이상 남성 세계 자살률 1위, 과로사 1위라는 조사결과처럼 의무와 책임만이 강조되는 한국 남성에게 초식남의 등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들은 희생을 거부하는 개인주의자인가, 시대를 이끌어가는 트렌드세터인가?

한편, 초식남과 더불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건어물녀'는 2007년 7월 인기리에 방영됐던 TV드라마 '호타루의 빛'에서 나온 말로,직장에선 누구보다 매력 넘치고 유능하지만 집에만 오면 아무렇게나 옷을 입은 채 마른 오징어 안주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고독을 즐기는 여성들을 말한다. 사회생활에 너무 지쳐 연애하고 결혼하고픈 마음이 건어물처럼 완전히 말라버렸다는 뜻이다.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