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가 일반 시민들을 위해 10만원짜리 교양강좌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소식이다. 다음 달 15일 시작되는 이 강좌는 '아름다운 공동체 건설을 위한 기본 교양과 상상력'이란 주제 아래 매년 두 차례씩 200명 규모로 개설될 예정이다.

강좌는 총 20회에 걸쳐 남북한 관계 같은 사회과학적 이슈는 물론 생명공학,한국현대사 등 자연과학과 인문학 주제까지 망라해 다루고 강사진 또한 일반인들은 접하기 힘든 화려한 진용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지식에 갈증을 느끼면서도 공부할 기회가 적은 일반 시민들로선 최고 명문대학의 수준 높은 강좌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아쉬운 느낌이 적지 않다. 혜택을 받는 사람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수강 신청을 할 수 없었던 대부분 시민들에게 명품 강의는 그저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애써 기획한 프로그램의 혜택 범위가 이 정도에 그친다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온라인 무료강의 프로그램(OCW)'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2002년 출범한 이 사이트(ocw.mit.edu)는 대학에 개설된 1800개 강좌 전체를 온라인으로 전면 공개하고 있다. 강의 동영상은 물론 강의 노트,시험문제까지 올려 놓았고 영어 청취력이 약한 사람을 위해 교수의 발언 내용도 친절하게 글로 옮겨놓았다. 아이디나 패스워드도 필요 없다.

MIT가 이런 파격적 지식 기부에 나선 것은 지식 공유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지적 진보 및 인류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실제로도 반향이 엄청나다. 이미 200여개국 7700만명이 이 사이트를 찾았고 1800개 강좌 중 600개 이상은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됐다. 매달 방문자만도 100만명이 넘는다. 각국 대학은 물론 첨단기술기업,방위산업기업,금융회사 등도 단골 방문객이다. 지식기부가 얼마나 큰 효과를 내고 있는지 선명히 드러난다.

취지에 공감해 OCW운동에 동참하는 사례는 줄을 잇고 있다. 미국에서는 예일 버클리 존스홉킨스 같은 명문대학들이 강의공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유럽 아시아 지역 등에서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지식공유를 촉진하기 위해 국제OCW컨소시엄까지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고려대 등 8개 대학이 참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제 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2007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주축이 돼 KOCW를 만들었지만 지식공유 운동을 한다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다. 참여대학은 40여개,강좌 수는 200개가량에 그친다. 그나마 사이버 대학 등이 애초부터 온라인 강의를 목적으로 만든 게 대부분이다. 도쿄대를 비롯 22개 대학과 공공연구소들이 참여한 가운데 만들어진 일본의 JOCW가 15만건 이상의 강좌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 견주어 봐도 턱없이 뒤진다.

물론 현실적 어려움이 없지 않다는 것은 안다. 모든 강의를 공개할 경우 학생들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고 동영상 제작 등에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MIT를 비롯 지식기부에 적극 나서고 있는 대학들 역시 그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대학과 교수들이 사명감을 가지는 일이다. 특히 이른바 SKY대학을 비롯 카이스트 포스텍 등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질 높은 강의를 제공한다면 나라 전체의 지적 · 기술적 발전에 큰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0만원짜리 명품강좌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더 높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나라 지성을 대표하는 대학과 교수들이 지식기부 · 지식공유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인식을 가져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