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구사무엘(20 · 건국대 경영학과 휴학)이었다. 국내 최고의 해커를 가리는 '2009 해킹방어대회' 최종 결선이 열린 지난 13일 오후.경기 종료 1시간을 앞두고 구사무엘이 속한 'ZZZZ'팀은 결선에 오른 나머지 9개팀을 동시에 공략하며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

"초반에 문제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긴장했어요. 하지만 처음에 역할을 나눈 대로 다들 잘해줄 거란 믿음은 잃지 않았죠.마지막에 문제들이 한꺼번에 풀리며 결국 1위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 구군은 "해킹방어대회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수준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이번 대회의 경우 국제대회 우승팀 등 참가자들의 실력이 무척 좋아 1등을 장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대학정보보호동아리연합회 등이 주관한 '2009 해킹방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ZZZZ팀은 국내 최고의 해커들이 모인 '초고수'팀이다. 구군은 지난해 열린 제5회 해킹방어대회에서도 '메이킹'이란 팀으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2007년에는 이병윤군(20 ·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2학년)과 함께 고등학생 최초로 KISA 주관 해킹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김은수 이지용군도 만만치 않은 실력파다. 이들은 현재 부산 한국과학영재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으로 학교에서 컴퓨터 천재들로 통한다. 김군은 서버의 취약점을 찾는 데 탁월하고,이군은 암호화에 특기를 갖고 있다.

ZZZZ팀 멤버들은 지난달 열린 국제 해킹방어대회 '코드게이트 2009'의 출제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미 세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구군은 "수많은 보안분야를 각각 따진다면 일부 국가에 밀리는 부분도 있겠지만,종합점수를 낸다면 한국의 해킹 보안 기술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들이 해킹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제각각이다. 이지용군은 "해커는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 같았다"며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고,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쁨이 컸다"고 말했다. 구군은 중학교 3학년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독학으로 해킹방어 기술을 공부했다.

해커에 대한 독특한 시각도 꺼냈다. 구군은 "해커는 방어하는 사람,크래커는 보안시스템을 공격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해커 역시 '공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공격하는 행위가 '목적'인지 '수단'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커는 공격을 통해 시스템의 취약점을 발견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크래커는 해킹을 돈벌이와 같은 목적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화이트(윤리적) 해커 양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정책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에 뛰어난 젊은 인재들이 많지만 "이건 하지 마라,저건 하지 마라"와 같은 규제들로 보안전문가가 성장할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이지용군은 "언더그라운드(음지)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다"며 "경력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