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이 빅블루(IBM)로부터 썬을 낚아챘다. "

오라클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총 74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최근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뒤흔들었다.

세계 최대 기업용 컴퓨터 소프트웨어업체인 오라클은 서버 및 스토리지를 주축으로 한 하드웨어 기업인 썬마이크로를 전격 통합함으로써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 전 부문에 걸친 '공룡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두 회사의 2008 회계연도 매출을 합치면 총 360억달러를 넘어서고 종업원은 11만6500명에 달한다. 시가총액은 1000억달러를 상회한다.

IT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통합으로 오라클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시장까지 장악하면서 휴렛팩커드(HP)나 IBM 시스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면서 향후 글로벌 IT시장의 판도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긴박했던 협상 막전막후

오라클은 썬마이크로 및 IBM과 합병 협상에 한창 집중하고 있었던 지난 수주간 썬마이크로와 비밀리에 개별 접촉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IBM과 썬마이크로 사이에 합병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등에 공개될 시점에도 오라클은 IBM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썬마이크로와 물밑 협상을 계속 진행하는 침착성을 보여줬다.

인수 가격과 시장 독점 관련 문제로 IBM과 썬마이크로가 의견 충돌을 보이면서 협상이 결렬될 움직임을 보이자 오라클은 재빨리 인수 가격 총액을 74억달러로 제시하며 썬마이크로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양사의 협상 과정을 지켜본 IT 업계 관계자는 "IBM과 협상을 진행 중인 와중에도 오라클 관계자들은 쉴 새 없이 다른 협상장을 오갔다"고 전했다.


◆IT 통합발전소로 변신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썬의 인수로 오라클은 IT 전 부문의 서비스를 신속하고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썬마이크로의 조너선 슈워츠는 "컴퓨터 시스템과 소프트웨어의 'IT 통합 발전소'가 탄생하게 됐다"며 "IT 영역 간의 장벽을 허물고 '솔루션' 해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라클은 썬마이크로 인수로 전 세계 10억대가량의 컴퓨터 시스템에서 운용하는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퓨터 운용체계(OS)인 '솔라리스'의 운영 및 소유권을 확보하게 된다. 최근 주가 하락 및 매출 감소로 부진의 늪에 빠진 썬마이크로는 오라클의 지원으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IBM 대항마'로 부상한 오라클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오라클이 자바 플랫폼과 솔라리스 OS 기술을 획득하면서 IBM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IBM은 한발 먼저 썬마이크로와 인수 협상을 벌이고도 최종 담판에서 오라클에 밀렸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라클과 IBM은 모두 자바의 최대 사용자다. 특히 IBM은 오픈소스의 최대 지원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오라클이 자바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존 뉴턴 앨프레스코 소프트 웨어 최고기술담당(CTO)는 "IBM이 썬마이크로를 놓친 것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라고 말했다. 에릭 오픈쇼 딜로이트 기술부문장도 "오라클의 썬마이크로 인수는 IBM에 나쁜 소식"이라며 "오라클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의 강력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썬마이크로의 서버 판매에 나선다면 IBM의 메인프레임과도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큰 수확은 '자바'

오라클이 2005년 이후 345억달러가량을 투자해 무려 52개의 크고 작은 기업을 사들였다. 이번 썬마이크로 인수는 그동안 전개해온 인수 · 합병(M&A) 전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IBM에 이어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2위를 유지하고 있는 오라클이 썬마이크로를 사들임으로써 얻은 가장 큰 자산은 '자바'와 '솔라리스' 기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는 "자바는 지금까지 인수한 가장 중요한 단일 소프트웨어 자산"이란 찬사를 보냈다. 자바는 현재 PC 8억대와 휴대폰 21억대에 깔려있다. 보급률만 놓고 보면 대중성은 충분히 검증된 상태다. 휴대폰 업체들이 지불하는 로열티도 만만치 않다. 썬마이크로는 2008년 회계연도에 매출 140억달러를 올렸고 이 중 2억2000만달러가 자바에서 나왔다. 일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선 오라클이 자바를 10억달러 사업으로 키울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분야 강화

썬마이크로 인수로 오라클은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도 앞서 갈 수 있게 됐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PC 대신 인터넷 상에 자료를 저장해 어디서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로 IBM MS 구글 오라클 등 주요 IT업체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썬은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많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썬마이크로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커뮤니티원 행사에서 자바 MySQL 오픈솔라리스 오픈스토리지 등을 포함한 썬마이크로의 소프트웨어 기술로 더욱 강화된 '썬 오픈 클라우드 플랫폼'을 공개했다. 자사가 보유한 모든 소프트웨어를 엮어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 대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IBM도 지난달 컴퓨팅 업체들의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 제품관 호환성 보장을 위한 '오픈클라우드 선언'을 마련하며 연합전선 구축을 제안한 바 있다. 이런 IBM을 제치고 오라클이 썬마이크로를 인수했기 때문에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IBM의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