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를 이끌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내기 위한 아시아 · 태평양지역 대학들의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 런민대에서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열린 아시아 · 태평양국제교육협회(APAIE · 회장 이두희) 4차 회의는 대학간 네트워크를 통해 아시아지역 문화를 공유하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합의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두희 APAIE 회장과 올해 회의를 주최한 지바오청 중국 런민대 총장, 리처드 라킨스 호주 모나시대 총장은 17일 오후 중국 베이징 런민대 밍더회관 총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이 주관한 좌담회를 통해 "앞으로 도래할 '아시아 시대'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대학 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이두희 APAIE 회장(이하 이 회장)=이번 APAIE 4차 회의의 소감은.

▼지바오청 런민대 총장(이하 지 총장)=이번 회의에 앞서 열린 세 번의 회의가 시작 단계였다면 지금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참가 규모도 커졌고 토론도 열정적으로 진행됐다.

▼리처드 라킨스 호주 모나시대 총장(이하 라킨스 총장)=그렇다. 중국 베이징대와 일본 와세다대 및 게이오대 등 주요 대학 총장 50여명이 모두 참석했고,전체 참가자 규모도 800여명에 이르렀다. 아시아 · 태평양지역 대학 네트워크가 완전히 자리잡은 느낌이다.

▼이 회장=금융위기로 각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기부금을 비롯한 각종 재정수입이 줄어드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 런민대나 모나시대의 경우는 어떤가.

▼지 총장=중국도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대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졸업생 취업인데 최근 2~3년간 중국 전역에서 대학 졸업생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런민대 졸업생의 경우 상위권 대학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업난을 덜 겪고 있지만 다른 대학들은 사정이 좋지 않다.

▼라킨스 총장=금융위기가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호주 정부의 경우 경기부양책으로 대학의 기반시설을 확대하는 데 16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그래서 모나시대는 미래 교육을 위한 엔지니어링 빌딩을 세우는 등의 사업에 1억5000만달러를 지원받았다. 또 호주는 호주달러 가치가 하락해 외국인 유학생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물론 기부금이 줄어드는 등 부정적인 영향도 없지 않으나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

▼이 회장=한국 대학들은 올해 등록금을 동결했다. 해마다 등록금을 올려왔는데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반면 대학의 지출 비용은 환율 및 인건비 상승으로 되레 늘었다.

세계 경제학자들은 이번 금융위기 이후 '더 강한 아시아'가 나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 아시아는 금융위기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앞으로의 시대를 '아시아 시대(Asia Era)'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 점에서 대학들이 한 국가의 인재가 아니라 아 · 태지역을 아우르는 인재를 양성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본다.

▼라킨스 총장=앞으로의 시대가 아시아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견해에 100% 동의한다. 미국 ·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이 주도한 '규제 없는 시장경제' 모델의 결함이 드러나면서 아시아 국가로의 권력이동(power shift)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흐름이 됐다.

그런데 아 · 태지역의 경우 각국의 언어와 문화관습이 다르다. 비즈니스 관행을 비롯해 무역 · 경제 · 정치관계를 잘 이해하는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려면 각국의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아시아 대학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이나 영국 등 유럽과의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했고 아시아지역 내 네트워크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호주 대학들 역시 마찬가지로 아 · 태 권역에 속하면서도 아시아보다는 미국 · 유럽에 더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아시아 · 태평양지역 내 대학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 총장=아 · 태지역에서 대학 간 교류 · 혁신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런민대는 이런 점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한국 대학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고려대와는 중 · 한기업연구소를 공동으로 만들고 9월부터는 런민대 안에 고려대회관이라는 공동 기숙사도 설치한다.

하지만 아시아 역내 대학 간 네트워크와 함께 아시아 및 미국 · 유럽 등 다른 지역 대학과의 네트워크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시아는 세계의 발전에서 고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회장=그렇다. 이번 회의는 APL(Asia-Pacific Leaders:아시아 · 태평양 리더스) 육성 프로그램을 출범시키는 중요한 성과를 낳았다. APAIE 산하에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독립조직인 APL을 두는 형태다. 32개 아 · 태지역 대학들이 우선 참여하기로 했다.

이들 대학 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 지도자를 키워낼 것이다.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각국의 인턴십 기회도 공동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이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커뮤니티를 맺고 서로 교류하면서 각국의 지도자로 성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유네스코뿐만 아니라 아시아개발은행(ADB),각국 정부,다국적 기업으로부터의 지지도 중요하다. 교육은 이제 대학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계와 대학이 함께 해야 한다. 오는 5월 한국에서 APL에 관한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지 총장=APL은 굉장히 중요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아 · 태지역 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는 언어장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북미지역은 영어가 있고,유럽도 언어가 다르더라도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유사하다. 반면 아시아는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등의 문화적 배경과 언어가 제각각이다.

한국의 전 문화부 장관이 얼마 전 한 · 중 · 일 모두 한자를 쓴다는 점에 착안해 중국 문자를 기본으로 한 플랫폼을 제안했다. 이런 식으로 국가 간 언어 장벽을 해결할 방안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 회장=언어 측면에서 해외 유학생을 보면 대체로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 해당국에 유학하는 경우,둘째는 영어를 잘하는 경우,셋째는 해당국 언어를 잘하는 경우다. 각 그룹의 조건을 고려해 이들에게 맞는 수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셋째그룹 학생들은 모든 수업을 다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첫째와 둘째그룹 학생들은 각각 해당국 언어와 영어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지 총장=런민대가 올해부터 운영하는 국제여름학교(International Summer School)가 이 회장이 이야기한 3개 그룹을 고려해 운영하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학교는 3개 파트로 나뉘어 운영되며 기본적으로 영어로 진행된다.

하나는 전공별로 세계의 최신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고,두 번째는 중국학,세 번째는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치게 된다. 외국 학생을 200~300명가량 유치해 중국 학생들과 섞어 가르치려 하는데 학부생 전원이 졸업 전 한 번은 반드시 참가하도록 만들 계획이다. APL과 마찬가지로 아 · 태지역 리더 양성에 큰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라킨스 총장=그동안 호주지역의 가장 뛰어난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고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아시아로 가야 한다고 본다. 호주는 그동안 아시아 유학생을 받기만 하고 아시아로 유학생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 같은 일방통행은 개선돼야 한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해당 국가 언어를 배워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예컨대 호주의 차세대 정치인과 기업인이 될 학생들이 중국어나 한국어를 안다면 아 · 태지역 교류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턴십도 학생들이 다른 나라를 더 잘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베이징=오광진/이상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