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신문방송학과 2011학번으로 경영학을 복수전공 중인 김모군. 중국 전문가가 되기 위해 3학년 1학기에는 홍콩시티대에서,2학기에는 중국 베이징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려고 한다. 김군이 해외대학 수강을 신청하면 고려대는 아시아 · 태평양 지역 대학들의 교류협력 확대를 위해 만들어진 아시아 태평양 리더(APL · Asia Pacific Leaders)에 이를 타진한다. 고려대가 APL 본부에 김군의 프로필을 보내면 APL 본부는 상대방 대학에 학생을 받아줄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OK 사인을 고려대에 보내준다.

이는 고려대를 비롯 아시아 · 태평양 지역 30여개 대학이 준비하고 있는 APL 프로그램이 도입됐을 때의 가상 사례다. 내년부터는 실제로 해외대학에서 자유롭게 강의를 듣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아 · 태지역 학생 교류센터 생긴다

아 · 태지역 대학들의 협력체인 아시아 태평양 국제교육협회(APAIE · 회장 이두희)는 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학에서 열리는 제4차 APAIE 회의에서 올해부터 대학 간 커리큘럼을 공유하고 학생 교류를 대폭 늘리는 APL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공식 발표한다. APAIE는 미주지역 대학들의 모임인 국제교육자협회(NAFSA)와 유럽국제교육회의(EAIE)에 이은 세계 3대 고등교육협회다.

APL 프로그램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대학 네트워크다. 그동안 아 · 태지역의 각 대학들은 학점교류 · 공동학위 · 교환학생 등 다양한 대학 간 협력을 위해 1 대 1로 관계를 맺어 협정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고 교류를 지속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APAIE가 운영하는 APL 프로그램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회원 대학 간에 자동으로 교류 관계가 형성된다. 학생들이 국가에서 국가로,대학에서 대학으로 옮겨다니기 위해 필요한 기숙사 등의 정보도 APL 본부가 모두 확보,매번 해당 대학과 1 대 1로 협의하는 등의 번거로움이 대부분 생략되는 장점이 있다. 모든 대학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학생 교류 센터가 생기는 셈이다.

◆아시아권 통합에 기여

APL 프로그램은 유럽의 '에라스무스 플랜'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에라스무스 플랜은 유럽연합(EU)이 만든 유럽 내 대학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럽 고등교육협회인 EAIE가 주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의 150만명 학생들은 벨기에에서 이탈리아로,스페인에서 핀란드로 옮겨다니며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두희 회장(고려대 국제교육원장)은 "그동안 아 · 태지역 대다수 대학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권 대학과의 관계를 맺는 데만 주력해 왔다"며 "유럽이 에라스무스 플랜을 통해 서로의 이해도를 높였듯 아 · 태지역도 APL을 통해 학생 교류를 늘리고 아시아권 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5월8일 한국에서 아 · 태지역 30여개 대학 관계자들이 모여 APL 프로그램을 위한 발기위원회를 결성키로 했다"며 "한국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KAIST가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APAIE 운영을 한국이 주도해 온 만큼 APL 본부도 한국에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해외 진출이 더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APL 프로그램은 3단계에 걸쳐 확대된다. 우선 오는 9월(2009년 2학기)부터 고려대를 비롯한 4~5개 대학에서 APL 본부를 활용한 학생 교류를 시범 운영한다. 이미 고려대 한양대와 일본 게이오대,중국 인민대 등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내년 3월(2010년 1학기)부터는 APL 프로그램 발기위원회에 참여한 30여개 대학으로 교류를 확대한다. 이어 내년 9월(2010년 2학기)에는 아 · 태지역 모든 대학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계획이다.

◆국제기구와의 협력도 추진

프로그램 확대에 따른 비용은 유네스코와 아시아개발은행(ADB),아 · 태지역 기업들과 연계해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유네스코와 일부 기업들은 이미 '범아시아 인재 양성'의 비전을 공유하고 참여를 약속한 상태"라고 전했다.

아시아판 에라스무스 플랜의 본격 시작에 대해 APAIE 컨퍼런스 참가자들은 크게 환영했다. 리츠메이칸대 아시아 · 태평양분교의 에드거 A 포터 학장은 "아시아권 인재는 서구 인재들보다 장점이 많은데도 상대적으로 해외 진출은 더뎠다"며 "APL 프로그램은 아시아 인재들의 국제화를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베이징=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