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보기술(IT) 강국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경제 발전과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네트워크 준비지수(NRI) 순위에서 한국이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인터넷 이용률 등 양적인 면에서는 상위권을 지키고 있지만 각종 규제 등에 묶여 정작 IT가 경제 발전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6일 발표한 '글로벌 정보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도 한국의 NRI 순위는 134개 국가 중 11위로 나타났다. 2007년도 순위(9위)보다 두 단계 후퇴한 것이다.

NRI는 WEF가 프랑스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INSEAD)와 공동으로 개인과 정부,기업의 정보통신 기술 발전도 및 경쟁력을 국가별로 평가한 것이다. 국가별 NRI 순위는 덴마크와 스웨덴이 1위와 2위를 지켰고 미국 싱가포르 스위스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2002년 20위에서 2003년 14위,2004년 24위,2005년 14위,2006년 19위였으나 2007년에는 9위로 올라섰었다.

한국은 정보통신을 활용한 국민 참여(2위),인터넷시장 경쟁 수준(3위),학교 인터넷 보급(5위) 등에서는 상위권에 올랐지만 △정보통신 시장 · 규제 · 인프라 환경(17위) △복잡한 창업 절차(86위) △입법기관들의 효과성(49위) 등 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 덕분에 인터넷 활용 등에서는 앞섰지만 정부 규제 등으로 인해 정보통신 기술이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IT정책 부재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지적한다. IT 정책을 총괄하던 정보통신부를 이어받은 방송통신위원회가 IT 정책을 제대로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IT 관련 예산도 푸대접받고 있다. 최근 정부는 28조9000억원에 이르는 추경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IT · 소프트웨어(SW) 뉴딜 부문 예산을 당초 5000억원에서 3361억원으로 크게 삭감했다. 서승모 벤처산업협회장은 "발전 속도와 변화가 빠른 IT는 국가 차원의 시나리오를 갖고 정부가 꾸준히 육성해야 하는데 이를 전담할 부처는커녕 IT 벤처기업의 애로 사항을 들어 주는 곳조차 없다"며 "과감한 규제 완화는 물론 IT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