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재정적자 규모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잣대는 없다. 다만 유럽연합(EU)이 회원국들에 적용하는 가이드 라인이 있다.

EU는 회원국들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적정 재정적자 규모는 정부 GDP 전망치(1028조원)의 3%인 30조8400억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정부가 작년 말 편성한 수정 예산안에서 내놓은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24조8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재정 건전성에 무리를 주지 않고 추가로 적자 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여력은 6조원가량에 불과하다.

만약 30조원을 추경 예산으로 편성하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은 5.3%가 된다.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이라 재정 건전성의 가이드 라인에 얽매일 수만은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위기로 다른 나라들도 재정건전성 악화 부담을 감수하면서 재정지출 규모를 늘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올해 경기 부양 등에 지출을 대거 늘리면서 재정 적자가 GDP의 12.3%인 1조7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정적자 규모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치다.

EU는 경제위기 우려가 점증함에 따라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한 규정을 올해부터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팽창 재정정책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초 주요 선진국 30개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분석한 결과 당초 GDP 대비 2.6%로 예상되던 재정적자 비중이 7.0%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 상황을 감안한 대규모 추경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선진국들에 비하면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편이지만 대규모 추경으로 가뜩이나 늘고 있는 국가 부채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적자 국채 발행을 통해 20조원의 추경을 편성한다고 가정하면 올해 GDP 대비 총 국가 채무는 당초 34.5%에서 36.2%로 확대된다.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국가 채무'도 150조9000억원에서 170조원대를 넘어서게 된다. 추경 규모가 30조원일 경우엔 GDP 대비 총 국가채무 비중이 37.2%이며'적자성 국가 채무' 비중은 17.5%로 급증하게 된다. 이에 따라 2012년 균형 재정(관리대상 수지 기준)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 계획도 폐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