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새로 나올 5만원권은 지금까지 나온 국내 화폐 중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화폐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화폐 그림을 그린 사람은 손만 닿아도 돈이 들어온다는 설도 있더군요. 그래서인지 1970년대에 5000원권의 율곡 선생 영정을 그린 이후 주례 부탁이 엄청 들어옵니다. 무엇보다 화폐용 영정을 그리게 되면 처신이 조심스럽지요. "

오는 6월부터 유통될 5만원권의 신사임당 영정을 그린 이종상 화백(71 · 예술원 회원 · 사진)은 "돈은 나라 경제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화백은 화업 50년 동안 고구려 문화의 원형과 독도의 진경만을 꾸준히 화면에 담아온 원로 한국화가. 30대 젊은 나이에 5000원권의 율곡 이이 영정을 그려 주목을 받았다. 또 지난 30여년간 37차례 독도를 방문해 '독도의 속살'을 샅샅이 화면에 되살려냈고 2005년에는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화가 60명으로 구성된 '독도 지키기 문화 의병'을 만들기도 했다.

이 화백은 "강릉 오죽헌에 걸려 있는 이당 김은호 선생(1892~1979)의 신사임당 표준 영정을 밑그림으로 삼아 머리 모양이나 복식은 전문가 고증을 거쳐 바꿨고 얼굴도 약간 측면으로 각도를 틀면서 입술과 눈동자 등을 다시 그려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처음으로 예술가의 얼굴이 지폐에 사용돼 반가웠다는 그는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나 요조숙녀라기보다는 개화기때 나혜석과 같은 당대의 신여성이었고 화가였다"고 말했다.

"5만원권 신사임당 영정 제작은 2007년 한국은행에서 먼저 제의를 해왔어요. 화폐 그림의 소재가 국내 처음으로 여성인 데다 한국의 미술문화 수준을 고려해 회화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일반인이 보면 기존 화폐와 달리 그림처럼 그려 낯설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보는 재미도 있을 겁니다. 외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화폐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오는 7월쯤 프랑스 파리 전시 때 하나의 작품으로 선보일 생각도 갖고 있고요. "

무엇보다 화폐용 영정을 그리게 되면 처신이 조심스럽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평생 남의 돈을 꾸거나 하는 돈 거래는 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도 돈이 없으면 그냥 굶는 게 낫다는 얘기를 가훈처럼 자주 말해왔다.

이 화백은 서울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 미대 교수와 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미술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1975년 완성한 대작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은 우표에 실렸다. 작년에는 전남 보성의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옆 옹벽에 길이 81m,폭 8m의 세계 최대 벽화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을 그리기도 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