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다섯 번째 이별을 하고 산속으로 머리 깎고 완전하게 떠나 버렸대~"

2001년 가수 박상민이 발표한 노래 중 한 구절이다. 사연인즉 한 여자가 고교 때부터 다섯 남자를 만났는데 첫사랑은 떠나고,두 번째는 플레이 보이였고,세 번째는 마마보이,네 번째는 양다리,다섯 번째는 약혼식장에 남자의 옛날 여자친구가 아이를 안고 나타났다는 것.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애정사에 그녀는 비구니가 돼 버렸다는 흥겨운 곡조의 노래,'무기여 잘 있거라'다.

직장을 구하는 것도 애정사와 비슷하다.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게 직장이다. 연봉도 많고 칼퇴근이 보장되며 업무도 재미있는 직장이면 좋으련만.이런 직장은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막상 직장을 잡으면 맘에 들지 않는 구석도 많다. 그러다보니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직 욕구가 솟아난다는 '3년차병','5년차병'이란 말도 생겼다. 그렇지만 이직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실패 사례도 숱하게 많다. 자신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달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섯 번의 실패,교훈은 '너 자신을 알라'

공업용 도료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창동씨(33 · 가명).그의 이직 실패 스토리는 '무기여 잘 있거라' 가사에 버금간다. 2003년 잡은 첫 직장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서비스인증이 주된 사업인 비영리기관이었는데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월급이 잘 나오지 않아 취업 8개월 만에 그만뒀다. 두 번째 직장은 중국 전문 물류업체.2년가량 다니다가 더 나은 직장을 찾고 싶은 마음에 사표를 썼다.

인터넷 취업포털을 통해 찾은 세 번째 직장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포털 소개 자료만 볼 때는 그럴듯해 보였다. 실상은 달랐다.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 밀린 월급을 달라고 소송하는 걸 출근한 지 1주일 만에 지켜봐야 했다. 결국 한 달여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세 군데를 더 전전했다. 두 곳은 월급이 밀렸다. 한 곳은 월급이 지나치게 적었다. 3년 전부터 현 직장에 둥지를 틀었다. 5년 만에 찾은 일곱 번째 직장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이직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게 결론"이라고 했다. 왜 이직하려 하는지,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지 알아야만 이직에 성공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연봉만 보고 이직,'헛꿈을 꾸었네'

1996년 24살 나이로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입사한 정이선씨(여 · 37 · 가명).그는 입사 5년차 때 무선인터넷 개발업체로 옮겼다. "연봉을 500만원 더 받을 수 있고 업종 전망이 좋다"는 말에 솔깃해서였다. 다시 1년여 만에 연봉 1000만원가량을 더 준다는 게임 개발업체로 옮겼다.

하지만 IT(정보기술) 깜깜이였던 그는 적응에 실패했다. 그 이듬해 인터넷방송 소프트웨어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그러나 웬걸.2003년 이후 IT버블이 꺼지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4년 한 바이오벤처 회사의 마케팅 담당 매니저로 들어갔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뚜렷한 기술도 없이 대박을 내기 어려운 바이오 업종 특성을 감안할 때 전망은 '계속 흐림'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금 다니고 있는 MBA(경영대학원)다. 정씨는 "목표도 없이 전문성도 쌓지 못한 채 500만원,1000만원에 혹해 이직을 거듭한 것이 실수였다"고 후회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속앓이만 심해지고'

중견 국내 제약회사의 김선식 과장(37 · 가명).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했다. 그렇지만 미국 본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 · 합병되면서 한국지사 인력 감원이 이어졌고 10년차인 그도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현 직장이다. 연봉은 전보다 적고 직급은 같았지만 어려운 시기에 다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회사를 옮긴 지 1년이 지난 지금 김 과장의 속앓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회사 문화가 너무나 달라서다. 이전 회사와는 달리 무슨 일을 하든 차장 부장 상무로 이어지는 결재를 받아야만 한다. 답답한 마음에 이직 초기엔 독단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가 인사팀에서 경고를 받기도 했다.

10년간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길들여진 업무스타일은 사사건건 동료는 물론 상사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빌미가 됐다. '건방지다','독선적이다'라는 인사평가를 참아내면서 일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회사를 떠난 상태다. 김 과장은 매일 퇴근 전 외국계 제약회사 인크루팅 홈페이지를 열어보는 게 일과다.

◆옮긴 직장,'오너 사장과 코드가 다르네'

작년 9월 가구 제조 중견기업인 B사에 스카우트된 한기철 부장(43 · 가명).전 직장에서 담당 임원과 마찰을 빚다 해외영업 전문가를 찾던 B사로 옮겼다. 직함은 부장이지만 실제 연봉은 임원급 수준.자신의 전문분야인 해외영업 업무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 대한 기대는 불과 3개월 만에 깨지기 시작했다. 오너 사장과 '코드'가 맞지 않아서였다. 기존 수출 지역인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는 게 한 부장의 판단.그렇지만 오너 사장은 매번 퇴짜를 놓았다.

한 부장의 입장에서 볼 때 오너 사장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중시했다. 해외 마케팅 전략에 조금만 변화를 주려고 해도 손사래부터 치며 의견을 묵살했다. 다른 직원들이 있는 회의 자리에서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직 6개월째,그는 지금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고 있다.

한 부장이 이직에 실패한 이유는 오너 사장과의 코드를 맞추지 못했다는 점.헤드헌팅업체 코리아브레인의 이광남 이사는 "오너의 영향력이 강한 기업이 유난히 많은 게 한국적 기업문화의 특징"이라며 "회사는 물론 그 회사의 경영자에 대한 업계의 평판까지 미리 확인해보는 일종의 역평판 조회를 반드시 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은/이정호/정인설/이관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