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42)은 세상에 '재미'를 파는 게임업체를 꾸리고 있지만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 화제도 빈곤하고 말솜씨도 별로다. 성격이 지나치게 꼼꼼해 직원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다.

그러면서도 아래아한글,한메한글,아미넷,리니지,리니지2와 아이온 등의 히트작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비결은 뭘까. 그는 한마디로 외곬이다. 게임 외에는 관심도,열정도 없어 보인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밤새 자신이 만든 게임을 하고 책을 읽는 등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반바지 샐러리맨

이런 개인적인 성향은 대기업의 샐러리맨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전자에 근무하던 시절 김 사장은 뜨거운 컴퓨터 열기 앞에서 밤새 일해야 했기 때문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곤 했다. 상사에게 불려가 혼나기 일쑤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보다는 자신의 일에 무엇이 더 효율적이냐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요즘도 거의 양복을 입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린 '2008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게임대상을 받을 때도 재킷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3년 동안 공들여 개발한 아이온으로 받는 수상 자리였기 때문에 억지로(?) 참석한 것이다.

게임 개발자로서 김 사장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형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일본 유럽 북미의 비디오 게임을 본따 만든 게 아닌,자신만의 프로그래밍 기법과 세계관을 담은 한국형 온라인 게임 말이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저 잘나가는 게임업체의 사장으로만 생각하기 십상이지만,그는 공학도 출신의 개발자다.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사장이 아이네트에서 근무하던 시절,송 사장이 만든 리니지와 아이네트의 게임사업팀을 엔씨소프트에 영입하면서 리니지 서버의 아키텍처(컴퓨터 시스템 설계방식)를 직접 수정했다.

◆독서와 게임의 관계

김 사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꿈'이다. '누구나 꿈꿀 권리가 있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열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현대전자를 나와 엔씨소프트를 설립한 것도,최고경영자(CEO)이지만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나름의 이런 철학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가장 많이 파는 회사를 만드는 것,끊임없이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과거 그의 꿈이었고 미래도 마찬가지다. 이런 그에게 게임업계에서 붙여 준 별명은 '꿈꾸는 피터 팬'이다.

게임 개발은 단순히 기술적인 능력뿐 아니라 방대한 역사적 지식,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콘텐츠 사업이기 때문에 다방면의 지식이 필수적이다. 김 사장은 1년에 100만 마일리지에 달하는 해외 출장을 소화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4~5권의 책을 읽으며 역사 철학 등의 분야에서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다.

그는 리니지,리니지2,아이온은 물론이고 북미와 유럽에서 서비스 중인 '시티 오브 히어로''길드워' 등 엔씨소프트가 만든 모든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있다. 리니지 시리즈는 상위 10% 안에 드는 높은 레벨을 유지하고 있고 아이온은 출시 한 달 만에 30레벨을 넘어섰다. 직접 게이머 입장에서 게임을 해 봐야 무엇이 부족하고 불편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 직원들은 밤새 게임한 뒤 부스스한 모습으로 오전 회의에 들어오는 김 사장을 이젠 자연스럽게 여길 정도다.

◆꿈은 계속된다

꼼꼼하기로도 그를 따라올 직원이 없다. 아이온의 핵심 개발이 끝나고 모든 개발진들이 이젠 쉬어야겠다고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김 사장은 "잘 만들었으니 이제 멋지게 마무리해 보자"며 홍보 동영상의 엔딩 크레디트까지 챙겼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김 사장과 개발팀 전원의 이름은 물론 비공개 시범 서비스에 참여했던 3000여명의 게이머 이름까지 크레디트에 넣은 것도 김 사장의 주문 때문이었다.

아이온의 그래픽팀장은 "달리기로 치면 마라톤을 완주한 상황이라 긴장이 풀려 있을 때였다. 사장님은 다른 회의가 줄줄이 잡혀 있는데도 아이온의 마무리까지 아주 세세하게 직접 챙기시더라"고 회상했다. 개발진들이 들고 오는 보고서를 마음에 들 때까지 몇십 번이라도 퇴짜 놓기로 유명하다.

꼼꼼한 성격은 그에게 '김 대리'라는 별명까지 안겨 줬다.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챙기는 모습이 '사장'보다는 '실무자'에 가깝다는 우스갯소리로 붙여진 애칭이다. 리니지를 태국에서 서비스하던 2005년께 그와 태국 법인에서 회의를 했던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게임의 컨셉트뿐 아니라 디자인,그래픽 등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신경 써서 분야별 개발팀장들이 다들 긴장했다"고 말했다.

올해 매출 5000억원을 목표로 잡은 게임업계 리더인 그가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공이나 실패라는 건 허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굴곡 많은 인생에서 성공이란 게 진짜 있나,반대로 실패라는 게 진짜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무리 어려워도 좌절하지 않고 그냥 갑니다. 성공을 염두에 두는 게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나의 꿈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 그가 엔씨소프트의 NC를 네버엔딩 체인지(Never-ending Change)로 풀이하는 까닭이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