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포장공업은 국내에서 종이 포장 박스를 생산하는 회사 중 최장수 기업이다. 1957년 설립돼 업계에서 처음으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안성 양산 대전 등 6곳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연간 22만4000t의 원지와 3억900㎡ 규모의 박스(라면박스 기준 5억개)를 생산,300여개 기업에 공급한다. 매출 규모로는 업계 4위다. 지난해 11월 작고한 창업주 고(故) 허석락 회장은 골판지 규격 · 용어 등을 정리한 '골판지 포장 편람' 제작,간행물 '골판지 포장'의 첫 발행인을 맡는 등 골판지 박스업계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수출보국 의지 담아 회사명 제정

허용삼 사장(65)의 할아버지 고 허병기 옹은 함경남도 단천에서 피복 공장과 목재소 학교 등을 운영하며 '단천 최고의 부자'로 평가받았다. 해방 후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사업체를 몰수당한 뒤 고리대금 업자로 몰려 투옥됐다가 학교 건립 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내고 풀려났다. 허 사장은 "선친인 허석락 회장은 20대에 사업장의 총지배인을 맡는 등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공산정권 수립 이후 핍박이 심해지자 1947년 단신으로 남한에 내려와 명태,광목,신발 등을 팔았다"고 회고했다. 이로부터 4년 뒤인 1951년 1 · 4 후퇴 당시 허 사장은 할아버지와 함께 월남했다.

이후 허 회장은 1955년 일본과 해산물 조미료 등을 거래하는 무역회사인 미동산업을 부산에서 설립, 경영하다가 1957년 승부수를 던졌다. 그간 모은 돈으로 일본 마루마쓰(丸松)사로부터 골판지 박스제조 기계를 도입,부산 감만동 1000평 부지에 골판지 포장회사를 설립했다. 일본을 왕래하면서 화물트럭에 실린 짐들이 상자로 포장돼 수송되는 것을 보며 '골판지 박스 공장을 하면 되겠구나' 결심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포장 박스로 가마니 등 마대 자루를 사용했던 시절.허 회장은 수출용 상품을 포장한다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을 한국수출포장공업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때 국내에는 3~4개의 포장박스 공장이 이미 가동 중이었다.

창업 초기만 해도 국가 경제 상황이 열악해 박스 수요가 많지 않았고 심지어 종이 원지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수년간 고생한 끝에 1961년 박정희 정부의 수출 제일주의 정책에 힘입어 주력 수출품이었던 가발 봉제 완구 신발 선풍기 소형냉장고 등에 쓰이는 포장 박스를 공급하며 사세가 커졌다. 한국수출포장공업은 1962년 부산 반여동으로 확장,이전했다. 1970년대 말까지 수출 호황으로 박스 수요가 폭증하면서 매출도 연평균 20% 이상씩 늘어났다. 휴일 공장 가동은 늘상 있는 일이었다.

2남3녀의 장남이었던 허 사장은 1967년 군에서 제대하고 23세에 평사원으로 들어왔다. 5년간 근무하다가 다른 사업을 하기 위해 독립했으나 2차 석유 파동으로 회사가 어렵게 되자 아버지의 권유로 1980년 부산공장 공장장으로 재입사 했다. 허 사장은 190명이던 직원을 90명으로 줄이고 부서를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를 통해 창립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던 회사를 이듬해인 1981년 흑자로 전환시키는 등 1996년까지 연속 흑자를 내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1982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허 사장은 1994년 최첨단 기계와 물류자동화 시설을 갖춘 안성공장(230억원 투자)을,97년 경남 양산공장(300억원 투자)을 짓는 등 사업을 확장해 갔다. 같은 해 외환 위기로 창립 이래 두 번째로 87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양산공장 가동과 영세 동종업체의 퇴출 등으로 99년부터 5년간 연간 1000억원대 매출과 100억원 이상의 영업 이익을 내면서 순항 중이다.

◆300여 기업에 포장박스 공급

미국 뉴욕공대(NYIT)에 유학 중이던 허 사장의 아들 정훈씨(36)는 1997년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방학을 맞아 귀국,양산 공장에서 아버지 일을 돕다가 3대째 가업을 계승했다.

"가업을 잇지 않으려면 다시 미국으로 가고,그렇지 않으면 학업을 포기하고 남으라고 했죠.처음에는 아들도 가업 승계를 거부했어요. 97년 양산공장 건설 현장에서 함께 숙식하며 설득했더니 넘어오더라고요. "(허 사장)

2002년 부사장이 된 정훈씨는 "앞으로 회사를 운영하려면 많은 공장을 지어야 하는데 때마침 양산공장이 건설 중이어서 경험을 쌓기 좋은 기회라고 판단,학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만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허 부사장은 2005년 460억원이 투자된 대전공장 건설을 주도하는 등 경영 전반을 이끌고 있다. 그는 "대전공장은 국내 제조업 공장으로는 드물게 가동 1년 만인 지난해 약 3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손익분기점에 근접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며 "공장의 최첨단 기계와 물류자동화 시설은 선진국인 일본에서도 견학을 올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수출포장공업은 1998년까지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에 박스를 공급했으나 수입 종이로 제작하는 탓에 수익성이 맞지 않아 생활용품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유한킴벌리, LG생활건강,매일유업,CJ 제일제당,한국야쿠르트,락앤락,유니레버 등에 박스를 공급하고 있다. 허 부사장은 내실을 다지면서 수익 경영을 강조한다. 그는 "지난해보다 약 15% 증가한 20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3~4년 내 포장박스 시장 점유율을 현재 8%에서 15%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