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빼면 금리 우대하는 상품, 다이어트 트렌드와 딱 들어맞아, 고객들 참여와 흥미 저절로…

내년에는 ELD 유망, 원금보장돼 주식보다 안전, 주가오르면 고수익도 가능"



하나은행 지점에 가면 창구 한 쪽 편에 체중계가 있다. 은행 직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고객용이다. 그럼 고객은 왜 은행에 와서 몸무게를 재는 것일까. 비밀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고객에게 우대금리를 주는 'S라인 적금'에 있다.

하나은행이 지난 9월 첫선을 보인 S라인 적금은 출시 한 달 만에 가입 계좌 수 10만개를 돌파하는 등 현재까지 14만명이 가입해 올해 은행권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11월까지만 신규 가입을 받으려 했으나 고객 반응이 좋게 나타나 판매기간을 내년 2월 말까지로 연장했다. 지난 4일부터는 워커힐호텔 아이스링크 최대 30% 할인 등의 혜택이 추가된 겨울판이 판매되고 있다.

최고 금리는 연 6.1%로 여느 적금과 비슷한 수준이고 타 상품에 비해 광고나 판촉도 많지 않았던 상품이 돌풍을 일으키자 하나은행 내부에서도 의외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결이 뭘까.

김성엽 하나은행 상품개발부장(사진)은 "예ㆍ적금에 대중적 관심사와 트렌드를 접목시켜 고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이 인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예ㆍ적금은 금리만 높게 하면 고객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은행 관계자들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전한다. 고작해야 0.1%포인트 단위의 금리 차이로는 차별성을 부각시키기가 힘들 뿐더러 수익성을 생각하면 금리를 무턱대고 높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김 부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미와 참여다. 그는 "금리를 아무리 높게 줘도 그 안에 재미를 느낄 만한 요소가 없으면 고객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도수호 에너지절약 환경보호 등 공익적 가치를 결합시킨 예ㆍ적금의 실적이 일반적으로 기대 이하에 그치고 마는 것도 너무 무거운 주제를 끌어들이다 보니 고객의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 탓이라는 설명이다.

S라인 적금은 이 같은 김 부장의 생각이 잘 반영된 상품이다. 그는 "S라인 적금은 다이어트라는 대중적인 이슈를 기초로 삼았고 가입자 본인의 노력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지게 돼 있어 고객의 흥미와 참여를 유발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S라인 적금은 가입 후 1년 내에 3% 이상 체중을 줄이면 0.3%포인트,5% 이상 체중을 줄이면 0.5%포인트의 금리가 추가되는 '감량조건부 우대금리'가 적용된다.

'히트작'을 만든 상품개발 담당자지만 김 부장의 관련 업무 경력은 의외로 길지 않다. 올해 1월부터 상품개발부장을 맡아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1988년에 입행한 이후 대부분의 기간을 영업지점과 프라이빗뱅킹(PB) 부서에서 근무했다. 그는 그러나 "본점에 있는 것보다는 영업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이 상품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책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오히려 감각이 떨어지고 아이디어도 바닥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초의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개인이지만 그것에 살을 붙이고 완성해 나가려면 조직 차원의 활발한 의사소통 과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상품개발부만이 아니라 하나은행의 전 임직원이 S라인 적금의 개발 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임원들 중에서도 '이건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상품명과 출시 시기를 놓고는 본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당초 '다이어트 적금'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했지만 너무 평범하다는 지적에 따라 공모와 설문조사를 거친 결과 정해진 것이 S라인이다. 이 과정에서 '핫바디(hot body) 적금'이라는 다소 외설적인 이름이 한때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다고.

출시 시기도 절묘했다. 김 부장이 이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은 지난 7월이었다. 그는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해 본격적인 피서철이 되기 전에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름을 정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새 9월이 돼 있었다. 그러나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출시한 지 얼마 안 돼 미국발 금융위기가 번져오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은행 예ㆍ적금으로 돈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김 부장은 내년에는 ELD(주가지수 연동예금)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ELD는 원금이 보장돼 주식보다는 안전하면서 주가지수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기예금보다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 상품"이라며 "정기예금에 넣은 돈보다 적은 금액을 몇 가지 유형의 ELD에 분산해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달 들어서는 내년에 선보일 예ㆍ적금 상품에 대해 팀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며 "우울한 전망이지만 외환위기 때처럼 가족 사랑 이웃 등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가치에 호소하는 상품이 주된 트렌드를 형성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