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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속좁은 부자 이웃

입력 2008-11-10 17:48:25 | 수정 2008-11-11 10: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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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해설서가 촉발한 '독도 사태'로 한·일 관계가 급랭했던 지난 7월 말.일본의 극우계열인 산케이신문엔 이런 기고가 실렸다. "한국의 대외채무가 늘고,외환보유액은 줄고 있다. 한국이 다시 제2의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때 일본에 긴급융자를 요청할지 모르지만,(지금처럼 독도문제에 한국이 강경하게 나온다면) 일본 국민들이 과연 그걸 용인할까. " 일본 방위성 싱크탱크인 방위연구소의 다케사다 히데시 총괄연구관이 쓴 글이다.

당시엔 '일본이 이런 허튼 협박까지 하는구나'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요즘엔 안타깝게도 '그게 허튼 협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제금융시장이 경색돼 한국의 멀쩡한 은행들이 달러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나라 안팎에서 '외환 위기론'이 고조될 때 결국 우린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긴급 제안한 한·중·일 정상회담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3국이 공동 대처하자는 명분이었지만,일본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이 긴급구조신호(SOS)를 친 것으로 이해했다. 당초 지난 9월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중·일 정상회담엔 한국이 독도 사태를 이유로 시큰둥했다는 점에서 체면이 구겨진 건 분명했다. 한국 정부가 요청한 일본 중국 등과의 800억달러 아시아 공동기금 조성이나 통화 스와프(교환)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한국이 손을 벌린 꼴이 된 건 틀림없다.

다급한 한국에 일본은 야속하게도 차갑게 나왔다. 한국 중국 등과의 공조를 전혀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한국에 대한 지원엔 분명 소극적이다. 통화 스와프만 해도 그렇다. 전혀 불가능할 것 같던 한국과 미국 간 원·달러 스와프는 성사됐지만,기존의 통화 스와프 규모를 늘리자는 일본과의 논의는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아시아 공동기금도 일본은 아시아에서의 경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우리 입장에선 참 '속 좁은' 이웃을 둔 셈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외환보유액을 가진 부자 나라가 일본이지만 이웃 한국엔 인색하기 그지 없다. 궁지에 몰린 미국의 모건스탠리엔 90억달러(약 10조원)나 지원하면서 한국엔 너무한 것 아니냐고 서운해 할 수도 있다. 최근 도쿄를 방문한 정부 관계자도 한국에 대한 일본의 냉랭한 태도에 "일본은 아시아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며 분통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문제는 아무리 속좁고 인색하더라도 일본은 무시할 수 없는 부자 이웃이란 사실이다. 한국의 수출 비중만 봐도 중국(22%) 미국(11%)에 이어 일본(7%)이 세 번째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는 일본이 올 들어 9월 말까지 8억8400만달러로 미국(9억4700만달러)과 맞먹는다. 한국 제조업은 또 부품·소재 분야에서 일본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

역사적으론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지금도 허튼 협박까지 하는 이웃이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렸다.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기 위해서다. 일본처럼 까다로운 이웃을 둔 것도 결국 우리의 숙명이다.

도쿄 차병석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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