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규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정치권의 행태가 정말 가관이다. 좌,우가 뒤바뀐 게 아니라면 아무리 철학이 없다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인터넷 규제를 반대한다는 민주당은 오프라인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규제를 주장하던 정당이다. 그런 정당이 인터넷으로 오면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로 변해버린다. 되돌아 보면 인터넷 실명제가 제기됐던 것은 다름아닌 참여정부에서였다. 그런데도 너무나 쉽게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인터넷 규제를 촛불시위 반작용쯤으로 여기는 것은 정치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광우병으로 목숨잃는 것과 사이버 테러로 목숨잃는 것을 애써 구분지으려는 일부 극단적인 좌파들의 태도는 너무나 허구적이고,이중적이다. 어쩌면 그들은 오프라인에서 당하는 것은 약자이고,온라인에서 당하는 것은 강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나라당도 문제있다. 규제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왜 인터넷에서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또 설득력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들도 철학이 없긴 매한가지다. 이 때문에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인터넷 규제 논란을 벌이기 전에 자신들부터 되돌아 보라는 얘기들도 터져 나온다.

정치권은 그렇다 치고 포털을 주도한다는 업체들은 더 답답하다. 그들은 인터넷 규제가 매우 위험하다는 논리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외국의 유명 법학자나 경영·경제학자들이 인터넷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면 이를 신주단지처럼 받든다. 그러나 인터넷을 해방구쯤으로 묘사한 그 어록의 주인공들이 인터넷이나 IT(정보기술)를 얼마나 깊이있게 알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그들은 그런 말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특정 집단의 시장적 욕구를 너무도 잘 간파하는 재주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규제를 반대하는 포털을 보면 마치 몸은 거인인데 사고는 어린애같다. 그들이 아직도 인터넷 초기의 'hands-off policy(자유방임정책)'를 그리워하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원칙은 꼭 인터넷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어떤 산업이건 초창기에는 지켜보는 게 올바른 정책이기에 통하는 것이다. 포털의 영향력이 커진 지금도 여전히 그런 논리가 수용되리라고 생각했다면 순진하기 짝이 없다.

가정이지만 만약 포털들이 조금만 전략적 사고를 가졌더라면 상황은 훨씬 달라졌을지 모른다. 불행히도 그들은 두 가지 중대한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신뢰할 수 있는 포털은 추구해야 할 방향이고,그런 점에서 규제기관이나 정치권을 오히려 선도할 수 있었는데도 그런 기회를 놓쳤다. 규제의 빌미를 제공한 건 바로 포털 자신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경쟁 포털 외에는 다른 적들을 만들 필요가 없었는데 콘텐츠 생산업자를 비롯해 수많은 외부의 적들을 양산하거나 갈등관계를 조장한 것도 큰 실책이다.

포털은 자신들을 인터넷 세상에서 적합도(fitness)가 가장 높은 '진화의 승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도 진화의 공식(차별화→경쟁→확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인터넷 규제를 규제로 볼지,진화의 기회로 볼지는 그들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어느 쪽이냐에 따라 그 운명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