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일본發후판값 쇼크

국내 조선업체들이 일본산 후판의 대폭 가격인상으로 속앓이에 빠졌다. 미리 받아놓은 선박 수주는 많은데 후판 공급처는 한정돼 있어 일본 업체들이 요구하는 가격 수준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이 사용하는 후판 가운데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40% 수준.이 만한 물량을 공급해 줄 만한 새로운 철강업체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신일본제철을 포함한 일본 철강업체들이 갑작스레 제시한 50% 인상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후판 공급처,대안이 없다

올해 국내 후판 수요량은 약 1300만t.이중 국내 철강회사의 공급물량은 700만t 언저리에 불과해 모자란 후판은 해외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다. 국내 조선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2001년 107만t에 불과했던 수입 후판량은 작년엔 466만t으로 불어났고 올해는 600만t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7년 새 6배가량 급증했다. 이런 수입물량 가운데 절반가량이 일본산이고 나머지는 중국 러시아 등에서 들여오고 있다.

일본산 수입 후판은 대부분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이 소화한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필요한 390만t 의 후판 가운데 90만t을 일본에서 들여왔다. 삼성중공업은 전체 후판 소비량 150만t 중 40%가량에 해당하는 60만t 정도를 일본 철강업체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중국산 후판은 품질이 떨어져 일본산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가격도 t당 1200~1400달러 정도로 일본산에 비해 메리트가 없다. 국내 조선업체들이 일본 철강회사에 목을 맬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까다로워지는 일본 철강업계

일본 철강업체들의 요구조건이 올 들어 부쩍 까다로워지고 있다. 큰 폭의 가격인상과 함께 계약기간을 '연간'에서 '반기'로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거세다. 지금까지는 일본 철강회사 가운데 JFE 정도만 반기를 고집했지만 올해는 신일본제철 등 대부분의 일본 철강업체들이 국내 조선업체와 반기 베이스(4~9월)로 계약을 맺고 있다. 원재료 가격에 따라 여러 번 가격인상을 단행하겠다는 복안이다.

결제대금도 달러에서 엔화로 바꾸는 추세다. 올 들어 달러에 비해 엔화가 강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타결된 국내 조선업체들과 일본 철강업체간 후판 공급 계약에서 신일본제철 고베제강 스미토모금속 등 상당수 일본 철강회사들은 '엔화 결제'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엔화 값이 오를 경우 국내 조선업체들의 원가부담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후판 종속 해소,3년은 더 필요

일본 철강업체들이 후판값을 올리면 포스코와의 격차가 50만원가량으로 벌어지게 된다. 포스코도 후판값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국제 가격보다는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체의 일본 종속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포스코 등 국내 철강회사의 물량 확대가 필수적이다. 현재 포스코의 연간 후판 생산량은 430만t으로 일본 철강업체인 JFE(460만t)와 신일본제철(455만t)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 7월 착공한 광양제철소 후판 공장이 완공되면 단숨에 200만t가량 생산량이 늘어 세계 1위에 오르게 된다.

포항제철소의 기존 후판공장도 설비합리화 등을 통해 생산규모를 늘려나가고 있고,내년 11월 준공 예정인 동국제강 후판공장에다 2011년 가동되는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까지 가세하면 국내 후판 수급상황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재 연간 700만t 수준의 국내 후판 생산량이 3년 뒤엔 1300만t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며 "이 때부터는 연간 600만t 수준인 후판 수입량도 300만t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