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하나의 사치로만 보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실로 마음의 소요처(逍遙處)를 마련하는 생활설계의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좋은 정원은 마음에 휴식을 주고 정신을 맑게 하고 생활을 풍부케 한다. 자연과 언제나 약간의 거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도시생활에 있어서 정원은 실로 어머니같이 고마운 것이다. "(김동명 시인의 수필 '정원' 중)

화초를 심고 기르는 원예활동은 바쁜 도시인들에게 명상과 여유의 시간을 가져다 준다. 비록 정원이 없더라도 베란다를 비롯 싱크대 옆ㆍ화장실 등의 공간을 이용한 화초 재배가 가능하다.

의학계에서는 원예활동이 제공하는 심신의 이익을 정신질환이나 신체장애의 치료에 접목해보려는 노력을 펴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을 시작으로 인류는 아름답고 정취있는 정원을 거닐면서 다양한 병을 다스려왔다. 미국 유럽 등에선 1879년께 원예치료의 효과를 처음 검증한 이후 학문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국내에는 1980년대에 치료 개념으로 소개됐다.

원예치료는 파종 모종이식 김매기 수확 등과 결실물을 이용한 꽃꽂이 염색 장식 화분만들기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환자의 심신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보완대체의학적 치료다. 우선 정원가꾸기나 화초재배는 운동 부족을 자연스럽게 해소하고 정기적인 화초 관리를 통해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갖게 해준다. 미적인 감각을 고양시켜 정신적 만족을 주는 만큼 예술치료 효과도 적지 않다.

화초의 향기를 맡는 것이 바로 향기치료다. 프리지어 향기는 혈압을 낮춰주고 서향의 향기는 스트레스에 의한 위통을 완화한다. 여기에다가 안정감을 주는 녹색과 형형색색의 꽃을 바라보면 색채치료가 된다. 예컨대 여백의 미를 살린 은은한 색조의 동양식 꽃꽂이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증가하는 델타(δ)파를 감소시키고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표현하는 서양식 꽃꽂이는 심리상태가 안정될 때 발생하는 알파(α)파를 증가시킨다. 또 심신이 피폐해진 사람은 파종부터 수확까지의 과정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게 되므로 심리치료나 다름없다. 이 밖에 실내에서 화초를 기르면 실내공기 정화와 적당한 습도 유지 등 환경 개선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원예치료는 이처럼 1석6조 이상의 효과를 낳는다.

원예치료가 가장 두드러진 효과를 보이는 분야는 노인의 치매와 우울증.뇌신경계질환 전문인 해븐리병원의 조문경 원예치료실장이 제출한 건국대 농학박사 학위논문에 따르면 치매환자는 원예활동으로 기억력과 집중력이 향상되는 효과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8주 동안 매주 2회 원예치료를 하고 약물요법을 병행한 결과 시ㆍ공간 인지능력과 기억력,주의집중력,언어능력,특정 행동심리증상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나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약물요법만 받은 사람의 경우 일부에서 기억력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시각(視覺)이나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이 감소했고 우울증은 더 심해졌다. 1999년 손기철 건국대 교수가 발표한 연구논문에도 원예활동을 한 치매노인은 노인우울증 척도(15점 만점)가 평균 11.5점에서 8.3점으로 낮아질 정도로 우울증이 개선됐고 분당 맥박 수(정상은 60∼80회)도 77.2회로 안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뇌졸중 환자는 원예치료로 운동 감각 인지 언어 정서기능의 장애를 개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재활치료로 갈음할 만하다. 실어증에 빠진 환자는 원예활동을 하는 동안 더 말을 많이 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인위적인 언어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말문이 열리게 하는 것이다. 중등도의 정신지체아 학생에게는 주체성과 책임감,긍정과 진취성을 북돋워 학습동기를 유발시킨다. 또 정서불안 성장장애 우울증 불안 위축감에 빠진 어린이도 식물을 가꾸면서 안정 아름다움 질서 협동을 체험하게 된다. 이로 인해 고민이 줄어들고 자부심도 형성될 수 있다. 유승호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원예치료는 오감을 자극하면서도 심리상태를 편안케 하는 장점이 있다"며 "안구 피로와 테크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안식을 가져다준다"고 강조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화초를 키우는데 알맞은 위치는>>

-넝쿨 식물은 높은 곳에:호야 자스민 시계꽃 스테파노티스 에피프렘넘 등은 빈 새장이나 바구니에 담아 천정에 걸거나 높은 서랍장이나 책꽃이 위에 올려놓는다.

-습기를 좋아하는 식물은 욕실:관음죽 베고니아 아나나스 세인트폴리아 등 잎이 넓고 수분을 좋아하는 식물은 욕실이 좋다. 단 뿌리가 상할수 있으므로 물을 너무 자주 주지 않는다.

-공기정화 식물은 침실에:산세베리아 펜다 테이블야자 안시리움 등은 침실에 두는 것도 좋다.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은 주방 창가에:베고니아 세인트폴리아 프리뮬러 콜레우스 테이블야자 야자 드라세나 등은 주방 창가가 좋다. 단 바람이 많이 불어 온도차가 많이 날수 있으니 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