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1주기 추모행사‥"이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가는/ 너.'(피천득의 <너>)

수필가이자 시인.영문학자였던 고(故)금아 피천득 선생은 서울대학교 재직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교수였다.

그의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 덕분이기도 했지만 수업시간에 '연애는 한 번 해보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라는 구절을 담은 영국 시인 존 키츠의 시를 가르칠 정도로 넘치는 유머가 인기 비결이었다.

제자인 김우창 고려대 명예 교수가 "8시간으로 예정된 강의에서 10시간 강의하시고도 2시간 강의료를 돌려줬다"고 할 만큼 솔직하고 청렴한 성품도 한 몫 했다.

피천득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이달 25일로 1년을 맞는다.

그 때 그 강의실을 메웠던 제자들이 모여 1주기에 맞춘 다양한 추모행사를 준비 중이다.

신찬우 숙명여대 명예교수,이맹성.천승걸 서울대 명예교수,이성호 한양대 명예교수,이익환 연세대 명예교수,김길중 서울사대 영어교육과 교수,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기금을 마련했다.

이제는 일흔을 넘긴 백발의 제자들.당시의 스승보다 더 나이를 먹은 이들이다.

기일인 25일에는 고인의 묘소가 있는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그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추모식을 갖는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고인의 제자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시비(詩碑) 제막식도 열리게 된다.

이 시비에는 고인의 시 <너>가 새겨진다.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시이기도 하거니와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고인의 바람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검은색 시비에는 시인의 며느리인 홍영선 여사가 한자로 '琴兒詩碑'(금아시비)라고 쓰고,그 아래에 서예가 조주연씨의 글씨로 시 <너>의 전문을 새긴다.

조씨는 생전에 선생이 쓴 시와 수필을 서예로 옮겨 액자와 병풍 전시회를 열었던 인연이 있다.

지난해 5월29일 선생의 영결식에 맞춰 한 독지가의 후원으로 제작된 금아의 실물 크기 동상이 모란공원 안에 있는 모란미술관 야외전시장에 설치된 바 있다.

샘터 출판사는 1주기에 맞춰 ≪인연≫ ≪생명≫ ≪내가 사랑하는 시≫ 등 피천득 선생의 저서를 모아 4권의 전집을 23일 출간할 예정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