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삶을 사는 길은 밝은 지혜의 눈을 갖추는 것,즉 '참나'를 찾는 데 있습니다. 참나에 이르면 모든 허상이 사라져 너와 내가 따로 없고 시비와 허세,사리사욕이 있을 수 없지요. 예수님도 부처님도 다 참나 가운데 있습니다. 진리의 눈을 갖춰 참나를 찾으세요."

불교계의 하안거(夏安居)가 시작된 19일 대구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74·조계종 원로의원)은 산사를 찾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하안거는 수행자들이 4월보름부터 석달간 한 곳에 모여 수행에만 전념하는 제도.이번 하안거에는 전국 선원 100여곳에서 2200여명의 납자(衲子)들이 더 큰 자유(깨달음)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산문에 가뒀다.

동화사의 경우 금당선원에 든 28명을 비롯해 산내암자인 양진암·내원암·부도암 등에서 모두 102명의 스님이 안거에 참여했고,이날 오전 경내 통일기원대전에서 열린 결제(結制·안거의 시작)법회에는 500여명의 스님과 신도가 참석했다.

"이곳 금당선원은 천하의 명당인 데다 예로부터 선지식이 주석하며 지도해온 터라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을 비롯해 효봉·향곡·전강 등 선가의 눈밝은 종사들이 여기서 후학을 지도하셨거든요."

진제 스님은 진리의 눈,바른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는 선각자가 아니면 인도할 수 없으니 선가에서 스승없이 혼자 깨닫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라 외도(外道)에 불과하다는 것.동화사는 물론 부산 해운정사 조실까지 맡아 거처인 염화실의 문을 항상 열어놓는 것은 공부하다 의문이 나거나 나름의 견처(見處·깨달음)가 생겼을 때 찾아오는 선객들을 맞기 위해서다.

"도처에서 선객들이 찾아와 점검을 받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깨달음을 인가해주지 않는다고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별별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참으로 깨달음에 이른 이는 많지 않습니다. 진리는 봤으나 죽이고 살리고 펴고 거두는 자재(自在)의 수완을 갖추지 못한 이가 한두 명 있는데 한두 고비 더 넘어야 됩니다."

진제 스님은 불교계에서 전강 스님의 전법제자인 인천 용화사 조실 송담 스님과 함께 '남(南)진제,북(北)송담'으로 회자되는 원로다.

1954년 해인사로 출가해 석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고 1967년 향곡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고 경허-혜월-운봉-향곡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다.

깨달음의 세계를 연 지 40여년.진제 스님은 "깨닫고 보니 처처(處處)가 불국토요 화장(華藏)세계요 반야(般若·지혜)더라"고 했다.

'남 진제,북 송담'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형상과 말에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며 "내 살림살이는 성철·향곡 스님만 알 뿐 누가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나 높은 자리를 물려준들 자식들이 그걸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나를 보는 진리의 눈이 한 번 열리면 그 지혜는 세상이 천 번,만 번 바뀌어도 변함이 없으니 허상에서 벗어나 참나에 이르는 것만이 영원히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오로지 한 생각으로 찾아보세요."

진제 스님은 "번뇌와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일체분별과 시비(是非)·장단(長短)을 다 놓아버리고 뼛골에 사무치도록 화두를 들라"고 강조했다.

강물이 쉼없이 흐르듯 자나 깨나 가나 오나 일여(一如)하게 화두가 흐르면 홀연히 어떤 찰나에 화두가 박살나고 뚜렷한 지혜가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모두 용심(用心·마음쓰기)에 달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선 전에 찾아왔을 때 '만약 큰 자리에 오르면 취사심(取捨心)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라.그러면 모든 사람이 따를 것'이라고 말해 준 적이 있어요. 미운 사람이든 고운 사람이든 모두 끌어안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그렇게 쓰면 덕이 쌓이고 쌓여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됩니다."

진제 스님은 또 최근 미얀마와 중국에 닥친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데 대해 "만유의 형형색색이 둘이 아니요 유정·무정이 한 몸이니 대자대비심으로 온 인류를 감싸고 동고동락하는 게 불교의 원리"라며 "성심껏 온정의 손길을 보내 아픔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선 "배움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을 거리로 뛰쳐나가게 만든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라며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외교적으로 좋은 절충안을 이끌어 내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대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