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1913∼1960) 작 '페스트'의 무대는 오랑시(市).페스트 창궐로 사람들은 쓰러지고 도시는 폐쇄된다.

의사 리외는 멀리 있는 아내의 입원 소식에도 불구,그곳에 남아 환자를 돌본다.

반면 기자 랑베르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어떻게든 도시를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그러던 그가 탈출 직전 마음을 바꿔 리외를 돕겠다고 나선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리외에게 그는 대답한다.

"혼자만 행복해지겠다는 게 왠지 부끄러워서요."

세상은 원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지만 그래도 그런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한 작가 카뮈의 답은 이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함께 살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고 소통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논란 끝에 여성부가 살아남았다.

애써 이관받았던 가족 및 보육 기능을 4년만에 도로 보건복지가족부에 고스란히 넘겨준채 다시 여성정책 기능만 담당하게 된 채로다.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된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존립 여부가 도마에 오른 건 중앙부처로서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 내지 사회 일각의 곱지 않은 시각 탓이었을 것이다.

여성부는 출범 이래 여성발전기본법 등 양성 평등을 위한 법과 제도 개선 및 소외계층 보호를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겐 이렇다하게 기억되는 일 없이 성매매 방지 관련 사항만 남은 듯하다.

2006년 말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단체나 회사에 대한 회식비 지원'이벤트로 웃음을 산 일 등이 그것이다.

남성은 그렇다 치고 여성들에게조차 필요한 부처라는 인식을 얻어내지 못함으로서 폐지론을 만들어냈던 셈이다.

여성부마저 없었으면 이 정부의 국무회의는 남성들로만 구성됐을 것이다.

결정적 다수라는 크리티컬 매스(최소 13%)엔 턱 없이 못미치지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최소한 다른 한쪽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은 막을 수 있다.

여성부가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폐지론을 극복하자면 지금부터라도 뚜렷한 정책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

금녀구역은 사라지고 모든 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알파걸의 증가로 20년쯤 지나면 사회 전체가 여성중심적이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국여성의 사회적 권한 척도는 형편없고 취업여성 증가에도 불구,2007년 11월 현재 직장여성 694만명 중 고용보험 가입자는 320만명으로 절반이 채 안된다.

취업여성을 위한 육아 환경은 30년 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조직 내 유리천장도 여전히 엄존한다.

여성부는 이제 약자와 소수자 뿐만 아니라 대다수 여성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과 실행방안을 내놔야 한다.

맞벌이부부가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과 제도 개선 이상으로 기업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의식 전환이 시급하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활동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

양성 평등 및 육아대책 마련이 기업과 사회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심도록 기업의 최고경영자 이하 중간관리자들과 대화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내 다른 부처의 적극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건 물론 전경련과 대한상의같은 경제단체와도 협력해야 한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조직원으로서의 행동규범도 알려야 하고 승진했을 때의 문제도 체계적으로 전해야 한다.

여성부가 해야 할 일은 양성평등이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남녀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비례대표와 여성 장관 후보들이 검증에 걸려 낙마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도 여성부의 몫이다.

몇몇 여성만을 위한 부처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는 전적으로 여성부 하기에 달렸다.

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