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동안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대학교수로 활동해 온 금난새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경희대 교수ㆍ60)가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등재될 예정이어서 관심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S&T그룹(회장 최평규)은 오는 29일 열리는 S&T홀딩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금 감독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우성하 S&T 전무는 "금 감독은 오케스트라 운영을 통해 이미 '기업가정신'을 입증했다"며 "그의 '음악경영' 경험과 아이디어를 경영에 접목시키기 위해 사외이사로 위촉키로 했다"고 말했다.

S&T는 S&TC,S&T중공업,S&T대우 등 12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1조2000억원 규모의 중견 그룹.금 감독이 사외이사로 취임하는 S&T홀딩스는 지난 1일 출범한 그룹의 지주회사로 그룹 내 투자사업 부문을 관장한다.이 회사의 이사진은 4명으로 구성되며 이 중 한 명이 사외이사다.

금 감독은 "최 회장이 내 음악경영에 대한 얘기를 간간이 전해듣고 이사진을 구성할 때 나를 떠올렸던 모양"이라며 "S&T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 감독은 10년 전 음악회를 후원해 준 최 회장과 첫 인연을 맺었으며 2002년 S&T 사가(社歌)를 작곡해 오케스트라 연주로 CD를 만들어 선물하는 등 관계를 돈독히 해오고 있다.그가 개별 기업의 사가를 지어준 것은 그때가 처음.금 감독은 "아무리 훌륭한 음악도 시장(청중)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금 감독은 지난해 풍산의 사가도 작곡해 줬다고.

그는 클래식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지휘자로 유명하지만 음악계에선 '혁신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경영마인드가 뛰어나다는 평가다.1992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를 맡은 그는 80여명의 단원이 40여명의 청중 앞에서 공연할 만큼 침체된 수원시향을 정상급으로 만들었다.1994년에는 클래식 음악계에선 처음으로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열어 6년 동안 전회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금 감독의 경영마인드는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돋보였다.메이저급 오케스트라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소속 기관으로부터 100억원 이상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관례를 깨고 자생적 오케스트라를 만든 것.금 감독은 오케스트라에 경영을 접목,1년에 30여개 도시에서 120여회의 연주회를 열며 8년째 수익을 내고 있다.

고객의 90% 이상이 기업이라는 유라시안의 성공 비결은 음악과 마케팅이 '윈윈'하도록 만드는 전략에 있다.기업은 브랜드를 알리고,유라시안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감동을 주기 때문에 기업 고객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원래 꿈은 외교관이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음악 인생은 실패의 아픔에서 피었다.경기고 진학시험에 낙방하면서 인생의 첫 좌절을 맛본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서울예고 작곡과에 들어갔다.금씨의 아버지는 '세모시 옥색치마~'로 시작하는 가곡 '그네'를 작곡한 고 금수현씨다.음악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일까.서울예고에서 만난 음악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었다.그는 이후 서울대 음대와 독일 베를린음대를 졸업하고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됐다.

금 감독은 "소비자의 문화적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기업이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며 "사외이사를 맡게 되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기업경영의 하모니를 이뤄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